우리 모두는 모진 세월을 버텨온 생존자다.

송은숙 승인 2021.01.07 15:43 의견 0

젊은 교사들이 많은 학교 현장에서 한 학기 생활을 마치고 주섬주섬 짐을 챙기고 있는데 20년 후배교사가 상기된 표정으로 문을 열고 들어선다. 핑크빛이 감도는 작은 예쁜 상자에 빨, 주, 노, 초, 파, 남, 보 색깔을 맞춘 마카롱을 내밀며 수줍게 말을 던진다.

“위층에 있는 계신 것만으로도 위안이 되었어요. 감사해요.”

그녀의 말에 가슴에 무거운 체증이 뻥 뚫리는 기분이 들며 에너지가 상승하는 봄기운을 느낀다. ‘이 기분이 뭐지?’

가끔씩 재미로 주변사람들의 사주를 봐주며 덕담을 전하는 것이 일 년 전 부터이다. 짧지 않은 인생에 교사생활, 기업경영, 그리고 타 회사 임원생활과 협회임원 역할 그리고 장성한 세 딸의 성장통을 겪은 후 20년 만에 다시 시작한 교사생활이 무척 낯설었던 필자는 동학년 교사들과 차 한 잔을 하며 이야기를 나누던 중에 유난히 말을 아끼는 한 교사가 눈에 들어온다. 이야기 속으로 다가오게 하고 싶어진다.

“…샘은 3년 전에 힘든 일을 겪었겠네요. 문서로 인한 상처가 있었던 것 같은데…….”

그녀와 눈을 맞추자 눈가에 이슬이 맺힌다. 그리곤 조용히 이야기를 시작한다.

3년 전 친한 친구와의 잘못된 인연으로 결혼 후 5년 동안 모아온 목돈을 날린 후 어리석기만 한 자신을 자책하기를 수백 번 하였건만 주변의 핀잔과 가끔씩 던지는 남편의 질책으로 한없이 자신을 작게만 만들었단다. 그러던 중 올해 10월 시댁의 도움과 대출로 작은 아파트를 매입하면서 그 돈만 사기를 당하지 않았어도 주변 사람들에게 손도 벌리지 않았을 것이라는 그 후회와 남편의 핀잔으로 부부관계도 소원 하던 중에 우연히 필자가 던진 한마디에 한참동안 흘러내리는 눈물이 참 아프게 느껴진다.

“아! 정말 힘들었죠? 그 마음을 어찌 헤아릴 수 있겠어요. 그러나 그것은 샘의 돈이 아니었나봐요. 그리고 샘의 연봉으로 몇 년이면 바로 회복되는데 너무 자책하지 말아요. 샘은 부자가 될 운명이에요. 앞으로 작성할 계약서를 잘 작성하라는 가르침을 하늘이 주신 거죠. 그리고 남편은 굉장히 섬세하고 확실한 분이시니 앞으로는 어떤 계약도 남편과 상의하면서 진행하시면 끄떡없겠네요. 그런 남편이 옆에 있는 것은 큰 복이지요.”

‘공감하는 참전용사 한 사람이 내겐 삶을 생존하게 하는 최고의 힘이다. 누군가에게 공감자가 되려는 사람은 동시에 자신의 상처도 공감 받을 수 있어야 한다.’

요사이 즐겨 보는 적정심리학의 대가 정해신 박사의 ‘당신이 옳다’에 나오는 문장이다. 필자도 2008년 직원에게 문서위조로 큰 손해를 보며 근 5년간 사투를 벌이며 기업경영을 했던 아픈 기억이 있었기 때문에 그 기억을 통한 위로와 격려의 말에 진정한 공감대가 형성되었나보다.

또 즐겨 보는 TV프로 ‘금쪽같은 내 새끼’가 있다 베테랑 육아 전문가들이 모여 부모들에게 요즘 육아 트렌드가 반영된 육아법을 코칭하는 프로그램이다. 금쪽처방을 내리는 정신과학자인 오은영 박사의 출발점은 아동의 마음을 살피는 일부터 시작된다 .아동을 살피는 관찰자가 아니라 아동이 되어 그렇게 행동해야만 했던 공감자가 되는 일차적 선상에서 치료가 시작된다.

2020년은 말말의 삼국시대였다. 말말말들의 홍수 속에 뉴스를 차단한다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가뜩이나 코로나로 마음의 말들을 주변사람들과 나누지 못하는 우리들은 사회관계망에서 계속 밀려가는 느낌을 받고 있다고 하소연한다. 집콕으로 집밥이 필수인 시대에 들어섰다. SNS에 자주 등장하는 내용도 가족간의 밥상과 일상의 내용이 늘어나고 있음을 보면서 자연스럽게 밥상에서의 대화가 살아나고 있음을 본다. 진정한 소통의 출발은 이미 시작되었다. 진정한 공감과 대화는 행복의 출발점이다.

유엔의 지속가능발전해법네트워크(SDSN)가 <2020 세계행복보고서>를 발표했다. 보고서의 국가별 행복지수에 따르면 한국은 153개국 중 61위. 지난해보다도 7단계 더 하락했다. 국가별 행복지수는 1인당 GDP, 사회적 지원, 기대 수명, 사회적 자유, 관용, 부정부패, 미래에 대한 불안감 등 7개 지표를 기준으로 산출한다. 우리나라는 기대수명과 1인당 GDP는 상위권이었으나 그 밖의 지표는 모두 중하위권으로 밀려나 있다. 한국은 각국별 행복지수 변화에서도 105위에 머문다. 행복지수가 가장 높은 나라는 핀란드다. 핀란드의 경우는 탄탄한 사회 안전망과 높은 수준의 복지체계가 행복지수를 높이는 비결로 꼽히지만 눈길을 끄는 내용은 따로 있다. ‘코로나가 각국으로 확산되는 상황에서도 지역사회 공동체들이 서로를 도우려는 높은 의지가 행복지수를 높이는 데 도움을 줬다’는 미국 CNN의 분석이다. 세계행복보고서도 ‘신뢰도가 높은 사회에서는 코로나19와 같은 전염병이 번졌을 때 피해를 줄이고 더 나은 삶을 위해 협력할 방법을 찾는다’며 ‘이웃과 기관이 서로를 도우려는 의지가 강하면 소속감을 높이고 자부심을 갖게 해 재정적 손실을 보상할 만큼의 이득을 준다’고 조언한다.

다시 살아난 집밥으로 사랑이 번지고 대화가 번지고 공감이 번지는 가정이 우리사회에 넘쳐나길 기대해 본다. 그리고 상호 협력할 방법들을 찾아내고 상호 웃음기를 찾아내는 밝은 사회를 기대하면서 스스로에게 희망을 던진다.

우리 모두는 모진 세월을 버텨온 생존자다.

2021년에도 우린 잘 해낼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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