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기 칼럼] 좋은 시민, 깨어있는 시민

이창기 학장 승인 2021.02.09 14:04 의견 0

세계의 일상을 멈춰 세워버린 코로나19 팬데믹 상황에서도 한국의 방역은 성공적이란 평가를 받는다. 소위 ‘K-방역’ 성공의 키워드는 좋은 시민과 헌신적인 의료진, 그리고 정부의 적절한 방역 시스템이라고 할 수 있다. 시사주간지 ‘시사인’은 2021년 1월 5일자 커버스토리에서 코로나19 재난기에 있어 ‘좋은 시민’이 어떤 힘을 발휘했는지 다루고 있다. 이 글에 따르면 재난은 속성상 공동체의 연대의식을 끌어올리며 출발하는 경향이 있다고 본다. 위기에 처한 공동체를 지키는 일에 참여하면서 시민들은 공적으로 중요한 일을 한다는 고양감을 느낀다는 것이다. ’97년 외환위기 때 한국인들은 ‘금 모으기 운동’으로 세계를 놀라게 했다. 그러나 재난이 길어지고 연대가 연대로 보답 받지 못할 때, 한 번 탈락하면 공동체가 구제해주지 않는다는 교훈을 통해 각자도생의 시대정신을 갖게 된다고 한다. 일본과 비교한 결과를 보면 연대의식이 얼마나 뒤처지는지를 체감할 수 있다. 소위 ’취약계층에 대한 손실을 정부가 적극 지원해야 한다‘는 설문에 두 배 가까이 낮게 응답하고 있다. 자영업자에 대해 일본인들은 72%가 적극 지원해야 한다는데 반해 한국인들은 45%, 비정규직 노동자는 69(일):44(한), 중소기업은 66(일):30(한)의 비율을 보이고 있다. 이 조사에서 선거 때 항상 투표, 법과 규칙 준수, 정부가 하는 일을 늘 지켜본다는 설문을 묶어 ’법제도 시민성‘이라 규정하고, 사회단체 참여, 다른 의견 수용, 환경제품 선택, 못사는 사람 돕는다, 지역문제해결에 참여한다는 설문을 묶어 ’연대적 시민성‘이라고 규정했는데 연대적 시민성을 가진 사람들이 공동체지향적이고 법제도 시민성을 가진 사람들은 개인지향적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 즉 코로나19 피해자를 돕기 위해 정부가 내 세금을 올린다면 찬성하겠다는 응답에서 연대적 시민성이 높은 그룹은 45%, 중간그룹은 23%, 낮은 그룹은 15%에 불과하다는 점에서 연대적 시민성이 높은 시민을 공동체지향적 시민이라고 할 수 있다. 법제도 시민성이 높은 그룹은 개인지향적 시민이라고 구별해 볼 수 있을 것 같다. 그렇다면 어느 그룹을 좋은 시민이라 하고 어떤 그룹을 깨어 있는 시민이라고 부를 수 있는가? 행정철학에서 가치수준을 나눌 때 가장 낮은 가치수준이 좋은(good)이고 가장 높은 가치수준이 바른(right)이고 중간이 합의(cosensus)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좋은 시민(good citizen)은 개인지향적 시민이라고 할 수 있고 공동체지향적 시민은 상대와 합의를 도모한다는 점에서 깨어 있는 시민(wake citizen)이라고 할 수 있을 듯하다. 즉 좋은 시민은 의무도 잘 지키면서 자신의 권리도 잘 확보하려 한다는 점에서 개인지향적이라면 의무와 권리는 말할 것도 없고 공동체에 크게 기여하려는 시민을 깨어있는 시민이라고 명명할 수 있다. 그렇다면 취약계층에 배려심을 보이는 일본시민을 깨어있는 시민이라고 규정할 수 있을까? 통상은 정치적 의견을 표출하지 못하는 일본시민을 질서만 잘 지키고 정부 말을 잘 듣는 기능적 시민, 또는 착한 시민이라고 규정해온 것에 비추어 혼란이 오지 않을 수 없다. 촛불로 대통령을 탄핵하는 한국국민들은 깨어있는 시민이긴 하나 좋은 시민이라고 부르지는 못하는 것인가? 아마도 일본인들은 법제도적 시민성에 철저할 뿐 아니라 문화 자체가 남에게 폐를 끼치지 않으려 하고 남을 먼저 배려하는 문화가 상존해 있다. 그래서 일본시민을 개인지향적인 좋은 시민이라고 하면서 나보다 못하는 사람을 배려하는 착한 시민이라고 부르되 깨어있는 시민이라고 부르지 못하듯 한국시민은 좋은 시민이고 정치적으로 깨어있는 시민이면서도 착한 시민은 아니라고 규정지을 수 있을 것 같다. 한국인들은 공동체지향성 보다는 개체지향성이 강하다는 측면에서 공동체의식을 키우는 노력이 교육이나 사회문화분야에서 활발하게 논의되고 구체적 실천방안을 찾아야 할 것 같다. 오죽하면 OECD 행복지수에서 꼴찌수준을 보이는 게 공동체생활부분일까! 수동적인 국민을 넘어 좋은 시민에서 깨어있는 시민으로 거듭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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