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기 칼럼] 공동체행복의 길

이창기 학장 승인 2021.03.11 16:06 의견 0

이창기 교수(한국장애인멘토링협회 총재)

행복이란 무엇일까? 플라톤은 행복의 조건으로 다섯 가지를 말했다. ① 먹고, 입고, 살기에 조금은 부족한 듯한 재산 ② 모든 사람이 칭찬하기에는 부족한 외모 ③ 자신이 생각하는 것 보다 절반 밖에 인정받지 못하는 명예 ④ 남과 겨루었을 때 한 사람에게는 이기고 두 사람에게는 질 정도의 체력 ⑤ 연설을 했을 때 듣는 사람의 절반 정도만 박수를 보내는 말솜씨.

플라톤이 생각하는 행복의 조건들은, 완벽하고 만족할 만한 상태에 있는 것들이 아니다. 조금은 부족하고 모자란 상태이다. 재산이든, 외모든, 명예든 모자람이 없는 완벽한 상태에 있으면 바로 그것 때문에 근심·불안·긴장·불행이 교차하는 생활을 하게 될 것이다. 적당히 모자란 가운데 그 부족한 부분을 채우기 위해 노력하는 삶 속에서 행복이 있다고 플라톤은 생각했다.

칸트는 ‘지금 사랑하는 사람이 있고 하는 일이 있으며 미래에 대한 희망이 있다면 행복하다’고 말한다. 행복의 세 가지 조건은 미래(희망), 사랑, 일로써 어떤 이들은 건배사로 “‘행복은’ 하면 ‘미사일’로, 또는 ‘행복의 미사일’ 하면 ‘발사’로 해주세요.”라고 응용하기도 한다.

많은 사람들이 행복이란 부귀영화를 누리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돈과 권력을 갖고 있으면 정말 행복할까? 돈이 없어 자녀의 욕구를 채워주지 못하거나 또는 사업에 실패해 자살을 택하는 사람들에게 돈은 절대 가치일 것이다.

권력 또한 마찬가지다. 그 맛을 누려 본 사람들에게는 권력을 잃는 것은 불행의 시작이나 다름없을 것이다. 그러나 부귀영화를 누리면서도 그 고마움을 모르는 사람들에게 돈과 권력이 행복의 원천은 아닐 것이다. 왜냐하면 다산 정약용 선생이 말하듯 부귀영화를 누리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저것을 그리워하고 저것을 얻기 위해 불법을 저지를 확률이 매우 높기 때문이다. 그래서 다산 정약용 선생은 약간은 모자란 듯한 것이 행복이라고 규정하고 청복(淸福)을 이상으로 삼았다. 청복의 반대는 열복(熱福)으로 부귀영화를 누리는 것인데 권불십년이라는 말처럼 부귀영화는 오래 지속되지도 못하고 뜬구름 같이 흘러가는 것이라 나중에 허망하고 그 빈자리가 더 커 보여 더 불행해질 수도 있다는 것이다. 사실 다산이 유배지에서 백성의 행복을 위해 직접 할 수 있는 일은 현실적으로 거의 없었다. 훗날에 쓰이기를 기대하고 좋은 제도와 정책을 연구하고 정리하는 게 고작이었다.

다산은 자신에게 운명적으로 그리고 현실적으로 주어진 ‘청복’을 실현해 가면서 행복을 누리고자 했다. 한때 천주교 신자였던 다산에겐 인간세계와 자연세계 위에 초월적 존재가 있다고 믿었다. 그 초월적 존재에 대해 부끄러움 없이 당당한 삶을 살려고 부단히 노력했다. 다산에게서 주목할 만한 것은 ‘공공의 행복’에 힘썼다는 사실이다. 공공의 행복을 위해 사회에서 소외된 최소 수혜자를 위한 복지 대책이 필요하다고 보았다. 다산은 목민관이 수행해야 할 첫째 덕목이 소외된 백성을 돌보는 것이고 그들을 살찌우는 것이라고 여겼다. 권력과 재력을 가진 사람들은 하늘의 대행자로서 어려운 사람들의 억울함과 배고픔을 해결해 줄 때 거기에서 보람을 느끼고 행복을 얻게 되는 것이다. 이게 진짜 행복의 원천이다. 그리고 하늘에 부끄럽지 않고 당당한 삶을 사는 것이 청복이다.

얼마 전 배달의 민족 창업자인 김봉민 회장은 자기 재산의 절반인 5,500억을 기부하면서 ‘나는 신의 축복을 받은 사람이라 그 복을 다른 사람에게 나눠줘야 한다’고 말하는 것을 보면서 그가 다산의 생각을 실천하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저작권자 ⓒ 시사저널 청풍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