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은숙 칼럼] 인생의 마중물

송은숙 승인 2021.08.04 14:45 의견 0

“아파트 입구에서 기다리니 내려와!”

새 둥지로 들어온 지 2주일째 토요일 오후 30년 지인 인 대학 선배님에게서 전화가 왔다. 이미 물 두병을 넣은 작은 빅백을 허리에 차고 계신다.

“안내해주고 싶은 산책길이 있어. 뇌경색과 암에서 탈출하여 건강을 회복하게 해준 감사한 장소, 기도하는 나의 장소!!”

무작정 따라나섰다. 주차하고 그냥 뒤를 쫄랑쫄랑 따라가니 세종보 근린공원의 조그만 산 입구에 ‘참샘약수터’라는 곳이 보인다. 안내서를 보고 있는데 그녀는 주변에 예쁘게 자라는 꽈리들로 직진하시더니 쪼그리고 앉아 풀을 뽑기 시작하면서 빙그레 웃으신다.

“내 작은 사랑 밭이야.”

산책하다 꽈리가 있어 잘 돌봐 주었고 3년이 지나니 그 주변에 번식하여 작은 군집을 이루었다는 설명을 하면서 연신 행복한 미소가 번진다.

다 마치고 주변까지 정리하더니 앞서 걷는다. 그냥 따라 걸었다. 좋다. 햇살도 바람도!!! 천천히 산책길을 걷자니 숲의 향기가 전해온다. 그동안 걸었던 시간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걷다 보니 작은 정자가 보인다. 아침산책을 하는 중간에 꼭 들러 하루를 시작한다는 아담한 정자! 오늘은 같이 걸어서 좋다고 하시며 먼저 올라가신다. 함께 올라가 보니 확 트인 전경과 함께 여름 물소리 새소리가 들린다. 심호흡을 크게 하니 가슴이 뻥 뚫린다.

“내가 보내준 일출사진들 있지? 여기서 찍은 거야. 일출을 찍으면서 사진을 배워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 너무 아름다운데 표현 못하는 내가 부끄러워서…….”

명당이라며 자리를 안내하는 선배는 내 인생의 큰 분이시다. 힘든 시기엔 언제나 도닥도닥 등을 두들겨 준 분, 인생의 역경 속에 헤맬 때 기도로 따스함을 전해 주셨고 슬픔에 잠겨 있을 때면 위로가 되는 책들을 한 아름 묶어 현관에 놓고 가신 분. 우울하여 갈팡잘팡 할 때면 맛집에 데리고 가 기어이 내 입에 음식을 넣어 주신 선배는 교육현장에서 정년을 하신 모 교회 권사님이다.

‘여기가 내가 보낸 일출 사진을 찍은 장소야.’

아! 여기군요.

‘난 일출 때의 그 장엄함과 느껴지는 살아있음의 에너지가 좋아! 그리고 자연이 내 삶의 멘토이고 이 장소가 아침 산책코스이지. 날다람쥐가 내 별명인 것 알지?’

이 곳 저 곳 으로 안내하며 그동안 얽힌 사연들을 조근조근 들려주는 그녀는 내리막길에 있는 그네에 몸을 걸치신다. 나도 그녀 옆에 앉아 힘껏 뒤로 갔다가 놓으니 공중을 나른다. 시원한 저녁 바람이 불어 온다.

그녀의 몸에 살짝 기대며 고백했다. 감사해요, 선배. 제 멘토이십니다. 감사합니다.

누군가를 지극히 아끼고 사랑하는 것, 격려하고 성원하는 것, 정성껏 기도해 주고 상대가 힘들 때 함께 있어 주는 것 모두가 내 인생을 묵묵히 걸어갈 수 있게 해준 ‘인생의 마중물’이었다

지렛대 같은 녹슨 쇠 손잡이에 한 바가지 물을 넣고 열심히 위아래로 계속 움직이면 펌프 입구로 올깍 쏟아지던 지하수 물!!! 관속에 한 바가지 물을 부어야 관속에 물이 차서 지하수와 연결되고 그때 따라오게 한 한 바가지 물이 마중물이다. 손님을 마중한다고 할 때의 그 마중을 뜻하는 마중물!!!

산책길을 내려오면서 선배 샘에게 마중물이 되어 주셔서 감사하다고 말씀드리니 듣기 거북하다 하신다. 하산 길에 유치원생들이 심어 놓은 봉숭아꽃들에게도 다가가 잡초 제거하면서 새삼 그녀의 미소가 참 아름답다는 생각이 들어 사진 한 장을 찰칵!!

나를 먼저 쏟아 부으면 사용할 물이 콸콸 쏟아지게 마련인 삶을 이치를 깨달으며 참 많은 도움과 충고와 조언들이 내게 오게 한 인연들에게 감사하게 하는 산책길이다.

자가 격리 생활을 한 지 이제 일주일이 되어간다.

‘심심하지? 이 영상을 보고 소리 내서 5분간 웃기!!!! 알았징?’

친구의 앙증스런 문자가 너무나 감사한 시간 행복하다.

나 또한 누군가의 마중물인가?

얼음은 차가운 물을 부으면 잘 녹지 않습니다. 뜨거운 물을 부어야 잘 녹습니다. 뜨거운 물이 사랑이고 배려이고 베풂이고 나눔이고 어울림이고 동행이고 감사이고 기쁨입니다.

- 김홍신 님의 <인생사용설명서>에서 따온 글 -

저작권자 ⓒ 시사저널 청풍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