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은숙 칼럼] 내로남불 (내romance남不)

송은숙 승인 2021.09.13 15:25 의견 0

“남이 남이 사랑하면 불장난
내가 내가 사랑하면 로맨스”

강민주의 곡 <로맨스 사랑>에서 나오는 가사이다.

내로남불은 기혼자와 다른 사람이 서로 부적절한 관계를 맺는 것에 빗대어 이중적인 태도를 비꼬는 용어다. ‘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이라는 뜻으로, 남의 행위를 비난하던 사람이 자신이 같은 행동을 할 때는 합리화하는 태도를 이르는 말이다. 2010년대 중후반에 들어서 TV나 공식 석상에서도 많이 쓰일 만큼 대중화되었다

저주와 막말의 거친 입, 경제적 약자의 피해만 가중시키는 헛발 황당 정책들, 그 어떤 반대에도 밀어붙이는 ‘막가파 입법’의 연속들을 언론에서 대하면서 과거의 신분사회가 다시 등장하는 듯한 착각을 하게 한다. 신분사회에서는 자기나 자기편을 항상 예외로 만들면서 나와 내 편은 늘 옳고 정의롭다는, 그래서 모든 행동준칙에서 예외를 인정받아야 한다는 우생학적 전제의 시대였으며 진화가 덜 된 반(反)지성, 반이성의 산물이었음을 우리는 모두 이미 알고 있다.

요사이는 TV 보기가 무섭다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2018년 동계 올림픽 출전을 목표로 4년간 피땀 흘린 하키 선수들이 정치적 목적의 남북 단일팀 구성에 국가대표에서 탈락했고, ‘노력은 배신하지 않는다’는 믿음에 허리띠 졸라매고 묵묵히 일하던 이들은 주식·가장자산·부동산 광풍에 ‘벼락거지’가 됐다는 보도를 흔히 접한다.

각종 미디어 속에서 하루의 시작하는 대다수 국민은 하루도 조용할 날 없는 한국 정치판과 각종 갈등과 혐오스런 소식들을 대하면서 은연중에 학습하고 있는 듯하다. 자라나는 대한민국의 새싹들은 어떤 생각을 하면서 자랄지 우리 어른들은 한번 생각해볼 일이다.

‘큰사람 되겠습니다.’는 필자가 근무하는 모 초등학교 인사말이다.

어느 날 눈망울이 초롱초롱한 아동에게 장난스럽게 첫 질문으로 큰사람이 무엇인지 물어보았다. 대통령, 국회의원, 변호사, 사장님, 선생님, 우리 아빠, 키 큰 사람 등의 대답을 한다. ‘어떻게 하면 큰사람이 될 수 있을까?’라는 두 번째 질문에 돌아오는 대답은 공부 열심히 하면 되고, 일등 하면 되고, 최고가 되면 된다는 대답이 많다. 일등과 최고로 함축이 된다. 참 무서운 현실이다.

교육부와 한국직업능력개발원은 지난해 7월 15일부터 10월 15일까지 초·중·고생 2만 3천223명, 학부모 1만 6천65명, 교원 2천800명을 대상으로 온라인 설문 조사한 ‘2020년 초·중등 진로 교육 현황조사’ 결과를 24일 발표했다.

운동선수, 교사와 같이 꾸준히 선호되는 직업 외에도 초등학생들의 장래 희망 ‘톱5’에는 유튜버와 같은 콘텐츠 크리에이터, 프로게이머도 포함됐다. 특히 유튜버와 같은 콘텐츠 크리에이터에 눈길이 간다. 잠깐이라도 시간이 되면 유튜브의 무분별한 영상을 시청하는 어린아이들을 어떻게 통제하고 행동을 바로잡을 수 있을까?,

우리들의 최고인 사람들이 언론에 비치는 모습은 ‘말말말’로 갈등을 조장하고 비난하고 힐난하고 남 탓으로 돌리는 ‘내로남불’의 전형이 많아 안타깝다. 토론의 형태로 그저 상대방의 의견에 수긍하거나 칭찬하는 토론자들은 거의 볼 수가 없다. 자신의 생각을 관철시키려 애쓰는 눈빛과 격렬한 두뇌싸움을 하는 모습만 보인다.

자신들이 무엇인가 잘못하면 남 탓으로 돌린다든가 아니면 그 기준 자체를 바

꿔버리는 사람들이 과거보다 많아졌다. 그리고 이것들은 보통 사람 속으로 파고들어 상호간 갈등을 부추기고 책임을 전가하는 형태의 사회 분위기를 만들고 길들여 갈등 사회를 더욱 부추긴다.

이른바 내로남불 논리에 근거하여 누군가를 비판할 경우, 먼저 그 상황이 내로남불에 해당하는지 엄격히 따져보아야 한다. 그러한 검토 없이 ‘내로남불이다!’라고 하는 비판을 남용할 경우 이는 부당한 비판으로서 자유로운 의견교환과 생산적인 토론, 나아가 사회운영에 대한 활발한 참여를 위축시킬 수 있다.

국어사전에 큰사람은 ‘됨됨이가 뛰어나고 훌륭한 사람. 또는 큰일을 해내거나 위대한 사람’으로 문자적으로 ‘매우 좋다’, ‘칭찬할 만하다’라는 뜻으로 나온다. 훌륭하다는 것의 거시적인 의미에 대해 교육자이자 선배이자 부모로서 생각을 해보는 시간이 된다.

기회의 평등, 과정의 공정, 결과의 정의에 조금씩 다가가는 사회적 현실이 그립다. 그리고 잘못을 인정하는 모습이 더욱 그리운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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