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대훈 칼럼] 도시 관찰, 도시의 주인은 시민인가?

도시 연구가 시작된 용산참사, 해외 출장, 제인 제이컵스

강대훈 회장 승인 2021.12.13 14:47 의견 0

수천 배, 수 만배 공화국, 대한민국은 전국이 대장동

자신의 견해, 주장, 운동이 없으면 포식자의 먹이가 된다

출장 숙박지의 조건은 높은 층, 위에서 아래를 내려보며 거리를 관찰한다

원주민은 내 쫓기고, 입주자는 높은 분양가로 박아지를 쓰고, 생태 환경과 도시 디자인은 꽝!

질 낮은 도시가 생산되는 메커니즘

그날따라 유난히도 춥던 2009년 1월 20일, 텔레비전 저녁 뉴스에서 충격적인 영상이 나왔다. 서울 용산의 한 건물 옥상, 농성 현장에 무장한 경찰 특공대가 진입하면서 불길이 치솟고, 그 화염으로 세입자 2명, 전국철거민연합회 회원 2명과 경찰 1명이 사망하고, 농성자, 경찰 23이 다치는 끔찍한 장면이었다.

당시 서울시는 용산 4구역을 도시정비 사업으로 재개발하고 있었다. 삼성물산, 대림산업, 포스코건설을 시공사로 지정하고 일대 5만 3442m²에 40층 주상복합 아파트 6개 동(493가구)을 세우기 위해 강제 철거를 강행하면서 시행사 측은 폭력 용역을 동원했고 경찰은 헬기와 진압 장비 등 물리력을 보탰다.

갈등의 원인은 보상비였다. 시행 측은 세입자에게 법.적.으로 규정된 휴업보상비 3개월분과 주거이전비 4개월분을 지급하겠다고 했지만 세입자는 저항했다. 지금까지 이 건물에서 장사를 하면서 먹고살았는데 턱없는 보상비로는 생계와 주거를 이어갈 수 없다는 것이었다. 그 돈으로는 반의 반 전세도 얻을 수 없었다. 시행 측(서울시, 용산구, 시공사, 재개발조합, 대출 은행)은 그 보상비 대비 개발수익은 몇 만 배를 얻으면서 법적 보상이라는 미명으로 저지른 야만의 폭력이었다. 참사를 규탄하며 진상 조사를 요구하는 용산의 천막 농성장을 찾는 시각은 비극의 그날처럼 춥고 어두운 밤이었다. 바람이 숭숭 들어오는 천만 분향소에 분향한 나는 비통했다. 부동산에 등기가 없는 세입자도 거주권은 보장받아야 한다는 분명한 관심이 생겼다. 용산 이후 도시 문제에 대해 구체적인 관심이 생겼다.

용산에 비하면 대장동 사건은 참사 없이 진행한 레벨업한 세련된 사냥이었다.

달라진 것은 50년 동안 개발 시대를 살면서 내몰린 원주민과 영끌로 집 한 채를 산 사람이 시민이 되면서 학습한 국민 의식이다. 땅값, 집값이 올라가는 이면의 거대 자본과 토건 세력과 정치권력의 결합 알고리즘에 대해 눈을 뜬 것이다.

한국에서 급조한 신도시들은 표를 얻어야 하는 정치인과 땅을 먹어야 돈이 나오는 세력의 먹이였다. 지자체가 새로운 지구를 만들려면 △ 부처 협의 △도시기본계획 수정 △지구 지정 △개발계획 승인 △실시 계획(택지 공급) 승인 △주택 건설 사업 승인 △분양공고 △주택 분양 △입주의 절차를 진행한다. 하이에나 무리같이 거대한 먹이를 발견하면 기획 단계에서 용역을 주어 뜯어먹을 이유를 만든다. 이 같은 지구 개발에 법을 만지는 사법권력이 한 다리 넣어 절차상 하자를 없게 하고, 갈등을 자신의 리그 속으로 넣어 분쟁이 생겨도 돈을 벌고, 분쟁이 없어도 돈이 나오는 뫼비우스 띠를 만든다. 한 지역의 역사성, 자연생태, 시민 편익은 뒤로하고 포식자는 합법이라는 잔칫상을 차린다. 대장동은 그 교과서였다. 개발공사, 민간시행사뿐이 아니라 검사, 변호사, 국회의원, 심지어 대법관 출신의 전직 판사도 그 아수라에 한 다리를 걸쳤다.

도시 개발로 천문학적인 수익을 챙기는 탐식의 공식은 단순하다.

세로축 속도, 가로축 획일에 회전율을 곱한다. 빨리 지으면 공사비는 덜 들고 현금은 빨리 나온다. 같은 형태의 건물을 여러 채 지으면 비용은 내려가고 수익은 올라간다. 지구, 구획, 건축, SOC의 공공 디자인이 비슷비슷한 것은 이 같은 속도와 획일(표준형 건물, 표준형 도시 계획)에 있다. 개발에 디테일이 강화하면 품질은 좋아지지만, R&D에는 시간이 들고 비용이 증가한다. 기후변화 탄소 중립, 생태와 생명, 문화와 아름다움이 들어간 틈은 없다. 자본과 정치권이 배를 맞추면, 뻔한 용역을 거치고, 시행사는 철 지난 도면으로 같은 국물이 우러나는 설렁탕을 끓인다. 같은 재료로 우려내고 물을 타면서 공사 비용(cost)의 혁신을 이룬다.

제1기, 2기, 3기처럼 신도시를 만들고 지구 지정을 할수록, 아파트는 수천 채, 수만 채로 회전율이 높아진다.

땅만 있으면 아파트를 올리고, 언덕과 비탈을 밀어서 건폐 효율을 높인다. 지형을 살리고, 지역의 기억을 남기는 것이 기본인데 말이다. 서울과 부산 등 거대 도시는 점점 재난에 취약한 군락이 되고 있다. 지진이 나고 해일이 덮쳐 전기가 끊어진다면, 데이비드 린치의 영화 이레이저 헤드같이 모든 것이 지워지는 암흑이 될 것이다. 세계에서 가장 빠르고 저렴하게 도시를 만드는 나라는 중국이고, 그 원조는? 대한민국이다.

일인칭 중심, 우리 모두 도시 관찰자가 되자!

출장이 잦고 생활이 불규칙한 나는 학원 한번 제대로 다니기 어려웠고 마땅한 취미 하나가 없게 되었다. 헬스장도 다니지 않고, 주말 등산도 가지 않으며, 골프도 치지 않는다. 대신 이십 년 이상 사업을 하면서 바이어, 협력사가 있는 지구촌 도시와 공장이 있는 해안, 사막, 오지의 산업단지를 다녔다. 일본 작가 무라카미 류는 ‘무취미의 권유’라는 책에서 한 분야에 대해 지극한 목표를 가지고 있는 프로는 모든 자원과 시간을 일 중심으로 통합하고 집중하기 때문에 취미생활 같은 것 할 시간도 생각도 없다고 썼다. 나도 취미 같은 것은 없다. 대신 빼놓지 않고 하는 일이 있다. 현장에서 조사하고 확인하는 습관이다.

마케팅을 자문하는 나에게 해외진출에 관한 의뢰와 상담은 한 달에 약 십여 건이 되었다. 일 년이면 100여 건으로 모아졌고, 이런 일을 이십 년 이상 했으니까 1,000여 건이 넘는 컨설팅을 제공하게 되었다. 의뢰자는 스타트업, 벤처, 중견기업, 대기업, 단체, 협회, 지자체, 정부 부서, 해외 기업과 교민까지 다양했다. 분야 역시도 농식품부터 자동차, 화학, ICT까지 장르를 가리지 않고 넘어왔다.

도시와 경제 생태계를 파악하는 업무 수행, field walk

컨설팅 의뢰가 오면 분야별로 담당에게 일을 나누고 회사가 확보한 전문 인력을 활용해 해답을 찾는다. 사내 자원으로 풀 수 없는 요구는 다른 컨설팅 기관과 협업을 한다. 그러나 보고서의 최종 서명은 사장이 하는 것으로 나의 의견을 달아야 했다. 고객에게 설루션을 제공해야 먹고사는 구조 속에 있는 사람에게는 엄청난 학습과 통찰이 필요했다. 그래서 출장지, 해외 어떤 도시에서도 쉬지 않았던 필드 워크였다. 도시는 시장 진출을 위한 게이트였고 인류의 생존과 번영, 시장의 모든 것이 집합되어 있는 플랫폼이었기 때문이었다.

마케터로서, 컨설턴트로서 25년 이상 출장을 선으로 연결하며 지구촌을 다녔다. 협력사를 방문하고, 산업 현장을 확인했다. 바이어 상담이나 강의를 마치면 시장 조사를 위한 타운와칭을 했다. 걷다가 눈에 띄는 것이 있으면 멈추어서 사진을 찍고 다시 걷는 행동의 반복이었다. 내가 사진으로 기록하는 대상은 상품과 상점, 건물, 거리, 산업시설… 기업과 단체의 해외시장을 진출을 자문하는 자로서 직무와 관련된 것들이었다.

지구촌의 수백 도시를 돌며 위와 같은 타운와칭을 하다 보면 지구촌에 조류처럼 흐르는 트렌드를 감지할 수 있다. 시민의 라이프 스타일, 에너지를 사용하는 방식, 도시 교통에 상해, 싱가포르, 파리, 런던, 뉴욕에 차이도 있고 동기화되어는 패턴이 있다. 도시 디자인에 미니멀리즘이 풍미하는가 하면, 다채색과 복합기능이 주류가 되기도 한다.

타운와칭, 필드 워크의 주체는 자신이었다. 내가 유저가 되어 도시 경험을 축적하면 자연스럽게 도시를 평가하게 된다. 효율적인 도시와 걷기 나쁜 도시, 도로 정체가 심한 도시, 비즈니스에 유리한 도시, 살고 싶은 도시가 자연스럽게 병렬된다. 일인칭 주어를 사용하는 사람은 전문가 또는 권위 같은 어떤 우상을 배제할 수 있다. 어느 순간 고단한 걷기에 재미가 붙어서 체류하는 도시를 적극적으로 탐색하게 되었다. 적극적인 관찰을 넘어 연구가 시작되었다.

연구의 조수는 통계이고, 도시 탐색의 도구는 걷는 것이었다.

어떤 도시든 도착하는 공항에서 지도 한 장을 구한다. 묶는 호텔과 방문지를 표시하고 동선의 시간들을 가늠해 본다. 호텔에 도착하면 객실에 여장을 풀고 거리 산책에 나섰다. 그리고 호텔 밖을 나선다.

런던이라면 런던 타워를 목표로 무작정 걷는다. 우회할 수밖에 없는 간선도로, 방음벽, 철로 이런 것은 돌아갈 수밖에 없지만 돌고 나면 다시 목표점을 찾아 걷는다. 지름길을 찾지 않는다. 편리한 도보를 골라가지 않는다. 눈에 띄는 목표점을 정해놓고 직진을 원칙으로 걷는다.

도시는 사람, 기술, 인프라, SOC, 유틸리티와 산업, 자본 그리고 마약, 매춘, 살인 범죄까지 다 들어가 있는 사일로(Silo)이다. 이것을 경제 관점과 통계, 도시 비교, 필드 워크를 통해 파악한다. 이렇게 뚜벅이 연구를 하는 우연히 책을 통해 제인 제이컵스(Jane jacobs)를 만났다.

도시운동의 시작, 미국 대도시의 죽음과 삶과 제인 제이컵스

제이컵스 여사는 시민이 도시의 주인이라며 도시를 먹이로 삼는 세력과 대결을 불사한 과격한? 여성이었다. 도시 운동의 어머니라고 할 수 있는 그녀는 도시나 건축과 관련하여 교육을 받은 적은 없다. 대학도 다니지 않았다. 그러나 영민한 관찰로 도시 문제를 취재했다. 지역 사회, 도시계획, 도시민의 삶에 대해 유려한 필체로 기술했다. 자신의 관찰로 도시학을 구성했다. 그 시선은 시민에 대한 연민이었다. 자신이 살았던 뉴욕 그리니치 빌의 거리와 공간은 사람 시선이 교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시선 안에 있으면 시선이 범죄를 예방한다. 도시는 다양한 시간대에 서로 다른 사람이 여러 용도로 사용할 수 있어야 한다. 그와 같은 관찰로 시작한 창의로운 생각은 세대, 계층을 분리하지 않는 근린주거, 복합도시, 21분 도시의 모태가 되었다. 100년 전, 제인 제이컵스 여사의 눈으로 보면 밤이 되면 빈 공간이 되는 서울 여의도. 도쿄 오다이바는 배트맨에 나오는 고담시 같은 우울한 도시이다.

우리도 도시 관찰을 해 보자.

내가 도시를 살피는 방법은 다음과 같다.

가늠하는 기준은 내가 사는 곳을 척도로 삼는다.

예를 들자면 내가 사는 대전시 향촌 아파트는 15층 19개 동의 1650세대인데, 이 단지 안에 부동산 사무소 네다섯 개, 세탁소 2곳과 의류 수선집, 콤비니 슈퍼 2, 중간 단위의 슈퍼 1곳, 미용실 3곳, 과일. 야채가게, 푸줏간, 중국집과 약국, 전기. 철물점, 떡집과 방앗간이 있다. 이것은 1650세대 약 5000명이 사는 주거 단지의 경제 생태계이다. 나는 이것을 한 단위로 머릿속에 입력해 놓고, 세계 도시의 거주지를 살피는 비교 척도로 삼는다.

이곳은 베이징 외곽, 앞에 보이는 27층 규모의 주상복합은 약 1000세대가 들어가니(가로×가로 세대×세로 층수) 두 곳을 연이어 있는 곳은 약 2000 세대로써 내가 사는 곳을 비교하며 생활 경제 생태를 살필 수 있겠다. 나라마다 도시는 달라도 이런 곳에 제공하는 편의품과 서비스를 제공하는 업종은 존재하기 마련이다. 이때 이 나라에는 없는데 한국에 있는 것, 한국에는 없지만 이곳에는 있는 것의 차이가 사업의 기회를 제공한다.

북경의 날씨는 공기오염으로 악명이 높다. 습도가 높고 바람이 없어서 등에서 솟는 땀으로 셔츠가 젖었다.

그래도 나는 걷는다. 걸으면서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경제 생태계)을 스캐닝한다. 요즘 북경은 주택 수요보다 공급이 많은 모양이다. 사방에서 분양 세일을 하고 있다. 거리에서 아파트 가격의 추이를 알아보는 것은 빠뜨릴 수 없는 항목이다. 한 시간 정도 필드워크를 하고 저녁 약속 장소로 돌아왔다. 이렇게 운동을 겸해서 지구촌 100개 도시의 필드 워크를 해 보니 도시의 발전 단계별로 일정한 패턴을 발견하게 되었다. 숙소에서는 인터넷을 열어 놓고 도시의 인구 변화, 물가지표와 도시 통계를 들여본다. 출장 틈틈이 첨단 IT 기업이 격전하는 전자 제품, 가전 매장에 간다. 생활 편의품과 식품을 파는 할인 매장도 빠뜨리지 않는다. 통계를 실계(實計, 내가 임의로 만든 개념)하기 위해서는 한동안 한 도시에서 그 지역 중류 생활자 수준으로 생활해 보는 것도 좋다.

도시 유틸리티가 풍부하고 문화 매력 있는 도시 수명은 1000년 이상 지속한다. 그래서 도시의 지향은 1000년 도시를 만드는 것이고, 적어도 100년 앞을 바라보며 도시 계획을 세우는 것이다. 세계 100개 도시를 필드 워크를 하면서 느낀 것이 있다. 명품 도시에는 시민과 문화 권력이 강하다는 것이다. 옆집에 건물 하나를 짓더라도 주민 동의를 얻어야 한다. 개성 있고 아름답지 않은 도시 계획은 승인받지 못한다. 부동산으로 천 배, 만 배의 수익은 도널드 트럼프도 하지 못한 일이었다. 그러면 과학 수도, 아름다운 대전을 지키고 발전시킬 수 있는 나, 시민, 우리의 역할은 무엇일까? 그동안 부족한 칼럼에 성원해주셔서 감사를 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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