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인노무사, 10년을 돌아보며

이은정 노무사 승인 2022.01.07 14:52 의견 0

2022년 새해, 필자는 공인노무사 11년차에 접어들었다. 자격을 취득하고 만 10년이 지난 것이다. 언제 시간이 이렇게 흘렀는지, 10년이라는 숫자를 되뇔 때마다 낯설고 놀랍다. 한 분야에 10년은 투자해야 진정 전문가라 할 수 있다던데, 나는 어떠한지 지난 10년을 가만히 돌아본다.

직업의 특성 때문에 정말 많은 사람을 만났고, 그들의 이야기를 들었으며, 치열하게 배우고, 부딪히며, 매번 어려운 선택을 하고, 그렇게 한 발씩 앞으로 나갔다. 타고난 영혼이 자유로운 ‘베짱이’여서 여유와 사색, 재미를 추구하는 인생을 너무나 살고 싶었으나 청년기 일에 대한 투자가 50, 60대와 노후의 질을 좌우한다는 생각으로 자발적 ‘개미’가 되어 워커홀릭같은 10년을 살아왔다.

수습노무사 초창기에 10년 후 내 모습에 대해 상상하곤 했었는데, 그 때 상상속 나와 지금의 나는 구체적 현실은 다르지만 어렴풋이 기대한 전반적 이미지, 주도적으로 나의 일을 하고 있을 거라는 상상은 이루어낸 듯하다.

초기 5년 동안은 진로와 계획을 수도 없이 바꾸어가며 고민하고 갈팡질팡하였고, 개업의 길을 정한 이후 5년부터는 사업의 안정을 위해 미친 듯이 발로 뛰었다. 신부대기실에서도 사건담당 의뢰인의 전화를 받아 진행사항을 설명하고, 여행 중 스노클링을 하러 나간 바다 한 가운데에서도 긴급한 자문사의 전화를 받았으며, 출산 전날까지도 고용노동부 자율점검을 수행하러 출장지를 돌아다니고, 산후조리원에서도 모유수유를 해가며 일처리를 하였다. 그 누구도 그렇게 하라고 시킨 사람이 없었지만, 공인노무사의 일 대부분이 누군가의 인생과 깊은 연결이 되어 있기 때문에 늘 만만치 않은 무게감을 느끼고 있었고, 개업노무사가 된 이후부터는 책임감이 더 강하게 생겼기 때문이다.

부족함이 많아 말도 안 되는 실수도 종종 있었으나 인복이 좋아서인지 큰 탈 없이 넘어갔고 고마운 도움도 많이 받았다.

내 뱃속에 있었던 까닭에 10개월 동안 어쩔 수 없이 나와 함께 일도 하고 출장도 다닌 그 아이는, 벌써 6살이 되어 컴퓨터 앞에 앉아 빠르게 자판을 치면서 바쁜 척 전화를 받는 엄마흉내를 낸다. 제법 표정과 말투까지 따라하는 그 모습에 어이가 없어 웃음이 나면서도 아이에게 보여지는 내 모습이 정말 그러하여 할 말이 없기도 하다. 오늘 앞으로의 10년을 다시 그려봐야 하는 가장 큰 이유이다. 새 다이어리 첫 장에 한 글자씩 앞으로의 10년을 그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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