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주영 에세이] 과거는 오늘의 낭만, ‘범백제포럼’ 2022년 전주·군산 순례

장주영 교사 승인 2022.02.09 16:06 의견 0
윤재원, 장주영, 김은희, 권진순, 윤형원, 표명희, 재안 주지스님, 이명호, 김하석, 강승주, 윤수호, 이만주

‘범백제포럼’은 석주문화재단 윤재원 이사장과 부여박물관 윤형원 관장, KDI의 우천식 박사가 지우들의 뜻을 모아 의기투합하여 만든 민간 모임 단체다. ‘백제 고도(古都), 도시가 박물관’이라는 것에 가치를 둔다. 한반도를 포괄하는 역사적 기원인 범백제문화를 부흥하여 지역을 살리고, 나아가 글로벌화 하려는데 목적이 있다.

지난 3년간 인문, 문화예술, 경제, 과학기술 등 여러 분야의 전문가가 모였다. 그간 학술회의, 전시회나 공연, 연구 발표 등의 영역별 활동을 함에 있어 서로 참여하고 전문성을 연계해왔다. 백제의 가치를 바라보는 다양한 각도의 관점을 공유하고 융합하면서 주제를 발전시켜 왔으며, 전문분야 교류와 문화 여행도 함께 하는 결속력 있는 범백제 동호회이다.

1월 22일, 범백제포럼은 1박 2일 전주·군산 순례를 하게 되었다. 이번은 범백제포럼 회원인 우범기 님의 출판기념회가 계기가 되었다. 행사에서 자리를 빛내고, 전주와 군산을 둘러보는 일정을 짰다. 전주미술관 김완기 관장의 예술작품 설명 및 경매, 피순대와 콩나물국밥으로 유명한 전주남부시장, 전주한옥마을 설명, 전주 전동성당과 호남제일성 풍남문 주변 거리 투어, 동국사 방문과 보이차와 함께하는 재안 주지스님의 법문, 근대역사박물관, 군산 이성당 빵집과 쌍룡반점, 근대화거리로 마무리되는 알찬 여행이었다.

동국사 대웅전

그 중 군산 동국사(東國寺)는 어떤 절인가?

동국사(東國寺)는 모든 재료를 일본에서 가져와 1909년에 만든 에도시대 건축양식의 절이다. 단청에 화려한 색을 입히는 우리나라 사찰과 달리 검은색의 처마가 묵직하고 남성적이다. 웅장한 팔작지붕 아래 건물 외벽은 많은 일본식 창문이 달려있으며 내부는 복도식으로 연결되어 있다. 절 뒤편은 천년만년 지나도 끄떡없을 왕대나무 숲이 완벽히 조성되어 울창하다. 한마디로 일본에 온 것 같다. 코로나 시대에 군산에서 ‘일본의 낭만’을? 가성비 짱이다.

하지만, ‘왜 군산에 일본 절이 있지?’

알고 나면, 분노가 올라오는 절이다. 원래는 금강선사(錦江禪寺, 긴코젠지)라는 이름으로 조선을 차지한 일본제국을 위해 지어졌다. 일본의 번영과 무탈을 기원하고, 식민주의 사관을 전파하기 위해 만든 절이다. 드넓은 호남평야의 양질의 쌀을 수탈하여 군산항에서 일본으로 실어 날랐다. 군산항 앞에 일본인 전용 중심지역을 정했다. 지구단위계획을 하여 깨끗한 도로와 기반시설을 갖춘 개화된 화려한 신식 집을 지었다. 그들의 부(副)와 무사안위를 기원한 절이 오늘날 동국사이고, 부촌 마을이 군산의 근대화 거리이다.

대개 일제의 잔재, 핍박의 본거지는 철거하고 파괴하여 정리되기 마련이다. 친일 유물에 대해 과거사를 청산하고 민족의 응어리도 치유하는 방편이라 여긴다. 그래서 그 시대의 많은 부정적 건축물들이 사라졌다. 1996년 식민잔재 청산을 이유로 조선총독부 청사를 철거한 김영삼 정부는 일본식 사찰인 동국사 철거를 검토하였다. 그러나 이 절은 조계종의 사유재산이라 철거보상비 3억 원 때문에 하지 못했다. 그 이후 여론도 잠잠해졌다. 다행히 동국사는 남아있다. 만약 철거되었다면, 동국사는 직관이 아닌 추상이다. 동국사는 ‘과거가 제거’되지 않고, ‘현재에 존재’하여 실체로서 역사적 교훈을 준다. 현재 절 내부는 한국의 불상으로 채워졌다. 새로 바뀐 동국사라는 이름도 한국을 뜻하는 해동성국에서 따왔다.

더욱 감동적인 것은 훗날 동국사에 놓인 참회 비석(2012)와 평화의 소녀상(2015) 이야기이다. 첫 번째는 2012년 일본 불교 최대 종단에서 지난 과오를 반성하고 참회하는 ‘참사문(懺謝文)’ 비석을 자비로 직접 세운 사건이다. 두 번째는 2015년 광복 70주년 기념 평화의 소녀상 설치 건립기금 모금액 중 일본에서 100만 엔을 기부한 사건이다. 비록 소수의 참회지만, 진정성 있고 뭉클한 사건이 아닐 수 없다.

일제만행 참회문과 평화의 소녀상

동국사가 세월 속에 그대로 남아있다. 그리고 아름다운 이야기들이 더해지며 우리 민족의 절로 승화되고 있었다. 남김으로써 용서를 빌 수 있는 기회를 줄 수 있었다. 우리는 관광지 명소가 된 군산 동국사에서 애국심도 느끼고 동시에 일본도 느낀다. 일본 관광객은 남의 나라에서 제 나라의 친숙함을, 한국 관광객은 제 나라에서 이국의 정취를. 후손들에게 실체를 놓고 스토리텔링이 가능한 훌륭한 역사교육 현장이다. 역사의 흐름을 자연스럽게 보게 해 민족성과 애국하는 마음을 줄 수 있다. 군산지역에 방문하는 관광객 덕분에 경제 파급효과가 크다. 이것이야말로 용서를 넘어 더 큰 포용으로 승화되는 ‘찬란한 복수’다.

한편, 전주에서는 전주 미술관 김완기 관장님이 동이옥션에서 오래된 예술작품을 유튜브로 생중계하며 경매를 진행하는 것을 참관했다. 100년 된 고가구, 자기 항아리, 옥으로 된 북한산 다기세트, 자개로 수놓은 목재 장식품……, 그곳 역시 오래된 일상의 작품이 보존되어 있었다. 그리고 지금의 낭만이 되어 경제적 가치가 매겨지고 있었다.

끝맺고자 한다. 우리 안에도 파괴하고 싶은 부정의 것들이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그 존재를 존재로서 받아들이고, 버리지 않고 묵혀 볼 것들이 있다. 시간이 지나 존재가 존재의 이유가 되어 더 나은 삶을 사는데 긍정의 연료로 쓰여 승화되길 바란다. 먼 미래에 ‘존재함이 옳았음’을 느낄 수 있는 경험을 갖기 위한 시간, 2022년 새해, 통찰의 시간을 가져볼 수 있는 아주 근사한 전주·군산 여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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