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기 칼럼] 리더가 되고 싶거든 재수해라

이창기 교수 승인 2022.02.11 14:51 의견 0

많은 사람이 당신은 회장을 여럿 맡는 등 리더십이 뛰어난 것 같은데 타고났느냐고 묻는다. 그럴 때 당신도 대학을 재수했으면 좋은 리더가 될 수 있었을 것이라고 답해준다. 재수해서 대학을 가보니 1년 후배들이 대다수를 차지하면서 대부분 형, 형 하면서 따랐다. 형이 밥도 사야 하고 술도 사야 하니 자연스럽게 리더가 되었던 것이다. 리더는 희생하고 베풀어야 리더로서의 역할을 잘 해낼 수 있다. 그 리더십은 군대에서 단련이 된 듯싶다.

광주에서 4개월간 호된 군사훈련을 마치고 최전방으로 배치되었다. 청량리에서 기차를 타고 춘천에 도착해 의암댐에서 다시 바지선을 타고 양구로 갔다. 양구에서는 군용트럭을 타고 하염없이 전방으로 향했다.

난생처음 강원도 땅을 밟은 데다 들어 보지도 못한 인제군 원통면이라는 지역에 도착했다. 여기가 끝이 아니었다. 다음날 트럭을 타고 또 전방으로 향하는데 살아 돌아오면 다행이구나 싶었다. 마지막 도착한 곳이 천도리 51연대였다. 다시 4대대 4중대로 배치를 받아 박격포 소대장을 맡게 되었다.

육군에서는 포병 못지않게 수학적인 머리가 필요한 보직이었다. 본래 인문학적 머리를 가져서 문과를 선택했던 내가 수학 공부를 해야 할 운명에 처했다. 물론 어영부영 소대장직을 수행할라치면 부하들에게 맡기면 될 일이지만 완벽주의를 추구하는 내 성격상 고참 부하를 붙들고 공부를 하지 않을 수 없었다.

보병학교에서 배웠던 지식에다가 고참병의 실무경험을 덧붙이니 소대에서 나만큼 박격포에 대한 지식과 실무를 잘 아는 사람이 없게 되었다. 일단 박격포 소대장으로서 지휘권이 서게 되는 것이었다. 한편으로는 돈 없고 소위 ‘빽’이 없어서 전방으로 끌려 온 부하들에 대한 연민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그래서 매일 하나하나 붙들고 그들의 인생 스토리를 듣고 일기장에다 기록하기 시작했다.

가끔 일기장을 펼쳐 보면 그 병사가 지금 무엇 때문에 고민하고 있을 것인가를 한눈에 알아차릴 수가 있었다. 어느 날 식당으로 가다가 김일병을 만나면 “네 동생은 여고를 잘 진학했나?” 하고 물으면 감동한 듯 놀라워하는 모습을 엿볼 수가 있었다. ‘우리 소대장이 나에 대해 관심이 많구나.’ 하는 느낌을 받게 만드는 것이었다. 그래야 지킬 게 아무것도 없는 병사들이 사고를 치지 않게 되는 것이었다.

그때만 해도 월북하거나 자기를 괴롭히는 선임들을 총으로 난사하는 일이 드물지 않았었다. 비록 군 생활이 힘들었지만 나는 적응하기 위해 여러 창의적 아이디어를 내놓았고 그것들에 대해 윗사람들이 칭찬을 하면 더 신바람 났던 것 같다.

한번은 병사들과 도로 개설을 위해 굽이굽이 돌아가다가 막바지에 이르렀는데 트럭을 돌릴 공간이 없는 벼랑에 몰리게 되었었다. 운전병이 내리더니 더 트럭을 가지고 내려갈 수 없으니 알아서 하라는 식으로 자빠지는 것이었다. 큰일이었다.

트럭을 그냥 내버려 두고 가면 그 책임은 소대장에게 주어지는 것이었다. 결단을 내렸다. 운전병에게 “나도 승차할 테니 함께 돌려보자. 아니면 함께 죽자.”고 했더니 운전병이 어쩔 수 없이 올라타서 백번은 왔다 갔다 하다가 결국 돌려서 나왔던 아찔한 경험이 있었다. 그때 그 모습을 바라보는 병사들은 모두 사색이 되어 손에 땀을 쥐고 지켜만 볼 수밖에 없었다. 역시 리더는 자신을 희생할 수 있을 때 리더십이 발휘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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