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기 칼럼] 전환기에 있어서 지식인의 역할

이창기 교수 승인 2022.03.10 14:46 의견 0

1987년 6월 시민항쟁과 2016년 12월 광화문촛불혁명 이후 우리 사회는 의미 있는 전환기를 맞이하고 있다. 아마 해방 이후 가장 가능성 있는 전환의 시점에 서있다 해도 성급한 말은 아닐 듯싶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환기가 밝은 내일을 담보해주는 것만은 아니다. 전환기는 항상 희망과 절망의 양면성을 지닌다. 전환기의 희망 쪽이 진보라면 전환기의 절망 쪽은 복고를 의미한다. 따라서 복고의 그림자가 다시는 고개를 들지 않게 하기 위해서는 놀라운 시민윤리의 합의가 절실하다. 그 합의의 도출은 그 사회의 지식인집단에 의해 수행되게 마련이다. 그러므로 전환기에 있어 지식인의 역할은 어느 다른 하위집단보다 더 크나큰 영향력을 미친다고 할 수 있다. 물론 지식인의 범위는 그 사회의 성격에 따라 달리 규정되어 질 수 있다. 우리 사회는 지식인의 범주에 대학생을 포함시키지 않을 수 없는 역사적 특수성을 안고 있었다. 물론 오늘의 대학생들을 지식인집단에 포함시키기에는 그들의 고뇌가 개인의 범주에 안주하고 있어 적절하지는 않을 듯 하기는 하다.

어쨌든 해방 이후 우리네 지식인집단의 공과를 면밀히 검토할 때 과가 크다는 사실을 부인할 수 없다. 특히 기성 지식인의 부정적 역할이 순수한 학생운동의 성과를 무산시킨 예도 적지 않다. 이제 기성 지식인은 역사와 민족 앞에 겸허하게 사죄하고 그 실추된 명예를 회복하기 위하여 놀라운 도덕적 각성이 있어야만 한다. 그렇지 않고서는 그들의 정당성과 권위가 송두리째 박탈당할 수도 있다는 위기의식의 인식이 필요하다. 특히 우리 정치사에 있어서 학생이라는 지식인집단이 차지하는 역할은 높이 평가할만하다. 그렇다고 마냥 어린 학생들에게만 희생을 강요하는 것은 기성 지식인들의 무책임성과 무사안일주의의 발로이다. 학생은 미래의 주인공으로서 학업에 열중할 수 있도록 정치사회적 환경을 정화시켜 줄 책무는 다름 아닌 기성 지식인들의 몫이다.

전환기를 맞는 지식인들이 그 도리를 다하기 위해 몇 가지 스스로 다짐해 두어야 할 게 있다. 반드시 연륜이 인생의 경륜에 대한 척도가 아니라는 점을 시인하는 열린 마음으로 전환기를 부둥켜안아야 한다. 그리고 진정으로 자기를 보호하기 위해서는 진실의 축대 위에 서있어야만 가능하다는 섭리를 통찰해야 한다. 그리고 변호해 줄 가치마저 없는 왜곡된 기득권을 보호하려다 정당한 기득권마저 침식된다는 역사적 순리를 유념해야 한다. 그럴 때 민주화만이 우리 민족의 살 길이라는 명제를 발견하게 된다. 왜냐하면 민주화는 시민을 두려워 할 줄 아는 정부의 탄생을 약속하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국민은 정부를 신뢰하고 정부는 국민을 위해 봉사하는 것을 최대의 사명으로 여기게 되는 것이다. 이처럼 시민과 정부가 유리되지 않을 때 안보와 경제와 문화의 발전이 가능하다. 이와 같은 시민적 합의를 이끌어 내는데 있어 지식인은 최전선에 서있으며 사상의 문지기요 사회의 목탁이며 소금으로서 작용할 수 있을 것이다.

이제 지식인은 대통령선거라는 전환기에 섣불리 복고를 머리에 떠올리지 않으며 어제의 행동은 불가피했다고 비겁한 변명을 늘어놓아서는 안 된다. 진즉부터 민주화를 꿈꾸어 왔다고 너스레를 떠는 추악한 모습도 보이지 않아야 한다. 오직 굳건한 신념의 바탕 위에서 꾸준히 이 민족의 살길을 천착해야 한다. 사실 민주주의체제의 건강성 유지는 양보적 이기심의 확장에 근거하고 있다. 본디 이기심의 기초원리 위에 구축된 민주체제는 그 구성원들이 그 기초원리를 이해하게 될 때 굳건해진다. 이러한 맥락에서 부를 가졌든 지식을 가졌든 가진 자들이 가시적인 양보를 할 때 다시 한 번 민주자본주의체제는 우뚝 서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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