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기 칼럼] 평화의 섬, 제주로의 다크투어

이창기 총재 승인 2022.08.09 15:07 의견 0

지난 7월 초, 한백통일재단의 초청으로 평화의 섬, 제주로 다크투어를 다녀왔다. 최근 JTBC의 세계 다크투어를 통해 다크투어리즘이 회자되기 시작했다. 다크투어는 전쟁이나 학살처럼 비극적인 역사현장이나 대규모 재난재해가 일어났던 곳을 돌아보며 교훈을 얻는 역사여행이다. 제주에는 고려시대 몽고의 침략에 끝까지 저항하던 삼별초의 항파두리라는 항몽유적지가 잘 보존되어 있다. 또 일제 강점기에는 항일운동이 활발했던 곳이 다름 아닌 제주였다. 제주사람들의 항몽과 항일을 지켜보며 비록 소외된 땅이지만 깨어있는 지도자와 도민들이 강한 공동체정신으로 연대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 강한 유대감은 1948년 4월 3일 발발한 소위 4·3사건으로 공동체의 분열을 겪게 된다. 그 당시 군정을 펴고 있던 미국은 제주도를 ‘붉은 섬’으로 낙인찍었고 이승만 정부는 본토에서 응원경찰을 대거 파견하고 극우청년단체인 서북청년회 단원들을 제주에 내려 보내 빨갱이 사냥을 자행하면서 제주의 민심을 자극했다. 당시 한반도는 분단이 될지도 모르는 위기상황에서 제주 남로당은 5·10 단독선거를 반대하고 이반된 민심을 바탕으로 무장봉기를 일으키게 된다. 1954년 9월 막을 내리게 된 4·3사건은 7년 7개월 동안 무장대와 토벌대 간의 무력충돌로 2만 5천 명에서 3만 명의 주민들이 희생되었다. 어린아이는 물론 부녀자, 노인까지 무장대와 한통속이라는 추정 하에 군인과 경찰에 의해 무참하게 총살을 당했으니 전쟁 중에도 민간인은 사살하지 않는다는 국제법상 제노사이드를 어긴 셈이었다. 이때 국가는 왜 존재하는가에 대한 물음이 떠오르지 않을 수 없다. 물론 국가는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켜주기 위해 존재한다. 그 당시 미국의 비호를 받고 있던 이승만 정부는 북한지역을 배제한 남한 만이라도 단독정부를 수립하고 싶어 했고 이를 반대하는 세력을 용공으로 몰아 적으로 간주했던 것이다. 이를 따르는 군경과 서북청년단들은 이념적으로 세뇌가 된 상태에서 빨갱이로 의심되는 민간인들에 대해 전혀 죄책감을 느끼지 않고 사살했던 것이다. 제주 4·3사건은 추악한 지도자의 권력욕으로 빚어진 1980년 5월 18일 광주에서의 공수부대에 의해 자행된 민간인학살의 비극과 크게 다를 바 없는 역사의 반복이었다. 4·3이나 5·18이나 빨갱이 사냥에 동원된 가해자도 피해자일 뿐 아니라 진짜 피해자의 가족들은 국가에 대한 분노와 배신감을 밖으로 표출하지도 못하고 영원히 가슴에 묻고 살아야 하는 운명이었다. 자동차사고로 자식을 잃어도 눈감을 때까지 가슴 속에 묻고 살진대 내가 믿었던 군인과 경찰로부터 내 사랑하는 가족이 생명을 빼앗겼다면 어떻게 배신감을 느끼지 않을 수 있을까? 그래서 제주 4·3사건은 제주도민 사이에서는 들추고 싶지 않은 역사적 비극이었고 가해자와 피해자가 공동체의 구성원들이니 더 더욱 그랬을 듯싶다. 지금도 4·3을 명명하지 못해 백지의 비석이 널려있다. 이제 4·3사건은 민족의 분단을 저지하기 위한 ‘4·3 평화운동’이었다고 재평가해야 한다. 그래야 이데올로기도 모른 채 억울하게 죽어 간 영혼들에게 위로가 되지 않을까 싶다. 그리고 외세를 이용해 자신의 권력을 유지하려는 지도자를 다시는 용납해서는 안 된다는 국민적 각성이 필요하다. 그들의 희생이 남의 일이 아니라 나의 가족에게도 똑같이 적용될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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