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기 칼럼] ‘바르고 고른 나라’는 꿈일까?

이창기 교수 승인 2023.01.09 16:30 의견 0

얼마 전 후배를 만났는데 예전과 다르게 활기가 없어 보였다. 공사에서 퇴직하고 대학원 동양철학과에 진학했을 때만 해도 새로운 세상을 만난 것처럼 들떠 있던 모습이 눈에 선하다. 그런데 지금은 풀이 죽어 있었다. 얘기를 들어보니 동양철학자들의 진리가 현실에서 전혀 실현되지 않는 것에 실망이 크다는 것이다. 최근엔 전남대의 유명한 석학이 오셔서 잔뜩 기대를 안고 강의를 들었단다. 그때 한 학생이 혼탁한 현실에 대한 선현들의 해법이 전혀 먹혀들지 않으니 어찌해야 좋을지 지혜를 구하는데 답변은 기대 이하였단다. 쉬운 말로 하나 마나한 이야기를 하더라는 것이다. 세상이 어지러우면 선현들의 지혜가 떠오르고 비록 어리석은 존재이긴 하나 인간들이 선현의 지혜를 좇는 것이 세상의 평화를 가져오는 지름길일 터인데 왜 현실은 거꾸로 가고 있는지. 후배 왈 ‘동양철학을 배우는 의미가 사라졌다.’는 것이다. 아마도 그 후배가 동양철학자들에게 실망하고 권태로워진 것은 작금의 정치상황과 연결되어 있다고 보인다. 정치지도자가 자신의 허물은 모른 체 하면서 상대의 허물을 들추기 바쁘다 보면 네 편 내 편을 가르게 되어 분열을 초래하게 되고 국민통합은 물 건너가게 된다. 정치지도자가 미래를 보지 못하고 과거에 머물러 있으면 국민에게 희망을 주지 못한다. 정말 ‘바르고 고른 나라’는 꿈같은 이야기인가? 공자는 일찍이 어진(仁) 세상을 만들기 위해 여러 지혜를 제자들에게 일러 주셨다. 공자가 말씀하시기를 ‘어질다는 것은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고 가장 사람다움이다.’라고 말씀하신다. 인(仁)이란 가장 도덕적인 마음씨이고 자연스런 마음씨라는 것이다. 따라서 어진 세상을 만들려면 정직한 사람을 등용하여 바르지 못한 사람 위에 놓으면 바르지 못한 사람도 정직하게 만들 수가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사람의 본성은 어진 것인데 어진 사람은 화합과 통일을 주도하고 어질지 못한 사람은 혼란과 분열을 증폭시킨다고 경고한다. 인간이 어짊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극기복례(克己復禮)해야 하는데 이기심을 버리고 예를 따르는 것이 곧 어짊이라고 하면서 편협한 혈연, 지연의 이기주의가 나타날 가능성을 배제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설파하셨다. 물론 여기에서 예(禮)란 자신의 희생을 의미한다. 공자가 생각하는 어진 세상은 정직하고 희생을 아끼지 않는 인간들의 정의로운 마음씨가 잘 작동되는 사회, 즉 ‘바르고 고른 나라’를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인간사회는 공자의 어진 사회를 만들어 가기 위해 얼마나 노력해왔고 어느 정도나 실현되었을까? 절대왕정시대에서 민주주의시대로 변화해 오는 과정에서 어느 정도 사람을 소중하게 여기고 사람다움을 갖추어 가고 있지 않나 싶다. 그러나 세상은 여전히 바르지 못하고 고르지 못하다. 그래서 다산 정약용 선생은 지도자들의 미덕을 강조하면서도 백성들의 깨어 있음을 더불어 중요하게 여겼던 것이다. 플라톤의 말처럼 ‘정치를 외면한 대가는 가장 저질스러운 인간에게 지배를 당하는 것이다.’라는 명언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소크라테스와 공자를 비교했던 이병훈 교수는 소크라테스는 개인을 행복하게 만들기 위해서는 먼저 국가가 도덕적 존재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한 반면 어진 사람에 초점을 맞추었던 공자는 자신이 익힌 진리를 정치와 연결하여 바람직한 국가를 건설하려 했다는 점에서 서로의 접근법은 달랐지만 개인도 국가도 도덕적이어야 한다는 사실이다. 한마디로 하늘의 뜻은 인(仁)이다. 그러므로 하늘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어진 사람, 어진 국가가 필요하다. 다산 정약용은 어진 국가가 되기 위해 일곱 가지 전략을 제시하는데 첫 번째 전략인 일본(一本)은 효제(孝悌), 즉 효도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며 마지막 일곱 번째 전략은 칠겸(七謙)으로 겸허해야 한다는 것이다. 새해에는 후배의 걱정을 조금이라도 덜어 주기 위해 정치지도자들이 더욱 겸허해지기를 바란다. 한치 앞도 내다보지 못하는 인간은 얼마나 어리석고 모자란 존재인가. 정치지도자들은 잘못에 대해 뻔뻔하지 말고 부끄러워하는 성찰의 자세를 갖는 한편 힘이 정의가 아니고 정의가 힘이 되는 겸허한 사회를 만들어 주길 기원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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