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경석의 단상] ‘덕분에’와 ‘때문에’

견문발검

홍경석 편집위원 승인 2023.03.08 16:10 의견 0

책을 보다가 한참을 웃었다. 내용은 이렇다.

억센 아내 등쌀에 짓눌려 살아온 미국인 남편 이야기다. 큰소리 한번 못 치고 주눅 들며 살아온 남편이 죽으면서 말했다. “여보, 내가 죽거들랑 결혼을 다시 해요. 이웃 마을에 사는 Mr. 존하고 꼭 재혼하세요.”

아내가 기겁하며 물었다. “아니, Mr. 존은 당신한테 큰 손해를 입히고 고통과 상처를 준 원수잖아요? 왜 하필 그 사람이죠?” 남편이 꺼져가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 자식도 한번 당해봐야 해.”

<바보야, 결론은 후반전이야>의 ‘그 자식도 한번 당해봐야 해’에 실린 글이다(P. 126~127). 일요일인 어제도 취재를 갔다가 지인과 죽이 맞아 만취가 되어 귀가했다.

아내가 속옷과 타월을 꺼내주며 샤워부터 하라고 했다. 목욕을 마친 뒤 소주를 두어 잔 더 마시고 잠이 들었다. 시장기가 들어 눈을 뜨니 자정이 다 되었다. 라면을 끓여 대충 배를 채웠다.

아내가 쓰는 안방은 문틈으로 전등이 켜져 있었다. 방문을 조심스레 열었더니 잠이 들었기에 전등을 껐다. 우리 부부는 방을 각자 사용한다. 부부는 같이 자야 한다지만 건강이 안 좋은 아내인지라 각방을 쓴 지는 꽤 오래되었다.

그렇지만 나는 늘 아내에게 감사하며 살고 있다. 착하고 고마운 아내 덕분에 눈치 안 보고 좋아하는 술을 마음껏 먹을 수 있다.

세상에는 두 부류의 사람이 있다. ‘덕분에’를 입에 달고 사는 사람과 ‘때문에’를 버릇처럼 말하는 사람이다. ‘덕분’은 ‘베풀어 준 은혜나 도움’을 뜻하는 말이다.

긍정적인 의사 표시에 사용되는 것이 특징이다. 반대로 ‘때문’은 ‘어떤 일의 원인이나 까닭’을 의미하며 주로 부정적인 맥락으로 쓴다.

먼저, “불경기 때문에 사업이 망했어.”와 “성적이 나빴기 때문에 원하던 대학에 못 갔어.”, “비가 왔기 때문에 지각했어.” 따위가 ‘때문’의 대표적 사용 사례다.

이를 ‘덕분에’로 바꾸면 어떨까. 그러면 “불경기 덕분에 악착같이 일했어. 그래서 결국엔 사업에 성공했어!”가 된다.

“성적이 나빴던 덕분에 남보다 두 배 이상 공부했어. 그래서 명문대학에 합격했어.”도 마찬가지다.

또한 “비가 온 덕분에 평소보다 30분 일찍 집을 나섰어. 그래서 지각을 안 했어.”가 될 수 있다. 위에서 얘기한 ‘그 자식도 한번 당해봐야 해’는 ‘때문에’의 대표적 사례라 할 수 있다.

악처 때문에 부부로 사는 동안 심한 고통을 느꼈을 남편의 지난날이 투영되기 때문이다. 이번에 출간된 저서는 참 감사한 분들의 크라우드 펀딩(crowd funding)이라는 성원 덕분이다.

‘덕분에’를 입에 달고 살면 표정이 보름달보다 밝다. 하지만 ‘때문에’를 입에 달고 사는 이는 어둡고 얼굴까지 찡그린다. 사자성어로 치자면 견문발검(見蚊拔劍)이다.

● 견문발검: 모기를 보고 칼을 뺀다는 뜻으로, 사소한 일에 크게 성내어 덤빔을 이르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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