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대훈 칼럼] 문명의 개입을 최소화하는 도시개발

강대훈 회장 승인 2023.03.09 14:43 의견 0

생태도시, 쿠리치바 1

코로나19 발생 이전에 방문한 도시는 생태도시로 유명한 브라질의 쿠리치바였다.

전시회를 마친 나는 상파울로에서 쿠리치바까지 브라질 국내 항공을 이용할 수도 있었지만 버스로 10시간 걸려 쿠리치바로 들어왔다. 번거롭고 다소 지치더라도 버스 이동은 터미널 구조, 도로 사정, 휴게소 시설과 그들이 제공하는 편의를 살필 기회다. 내가 리우데자네이루에 건너가기 전에 특별한 일도 없는 쿠리치바에 온 것은 대전 출신 도시학자 박용남의 저서 <꿈의 도시 꾸리찌바>를 읽은 까닭이다.

쿠리치바는 면적 432㎢에 인구 180만 명의 도시로 대전광역시와 비슷한 규모이다. 나는 사흘 동안 쿠리치바 도심 호텔에 묵으면서 출근 시간에 맞추어 숙소를 나갔고, 일을 보듯이 시내 곳곳을 관찰했다. 그다지 높은 랜드마크가 없고, 화려하지도 않은 외관에 특별한 점이 없는 도시였다. 그러나 자연, 생태, 약자 배려에 대한 철학이 도시 전체에 투영되어 있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상점과 가로에 간판을 덕지덕지 붙이지 않았고, 거리 조명도 눈부시게 반짝거리지 않아 마음이 편했다. 수수한 도심이지만 왠지 여유가 있었고, 시내 교통은 느리지 않게 막힘이 없었다. 도시 전체에 천박한 돈 냄새가 나지 않는 이면에 쿠리치바 만의 특징이 엿보였다. 무엇인가 문명과 자연이 어깨동무한 듯한 색깔이 있었다.

2차 세계대전 이후 지구촌에는 도시재건과 도시화, 공업화가 급속히 진행되었다. 그 가운데 내게 충격을 준 곳은 제3세계 도시의 대책 없는 환경오염이었다. 마닐라, 다카, 나이로비 등지에 오폐수로 가득한 하천은 기름띠로 엉겨있었고, 비닐봉투와 페트병, 생활 쓰레기가 곳곳에 산더미가 되어 쌓여 있었다. 가난한 나라의 도시 빈민은 오염된 하천변에서 오염된 물을 먹고, 아이를 낳고, 쓰레기더미에 기대어 살고 있다. 이 같은 몸살을 겪은 한국은 1988년에 ‘공해추방운동연합’을 결성하면서, 공해문제를 사회문제의 중심으로 올리기 위해 투쟁했다. 그러나 지구촌에는 7, 8, 90년대의 또 다른 난지도들이 제3세계 신흥 도시에서 자라나고 있었다. 쿠리치바도 한국의 도시들과 같은 시기에 이 같은 공업화와 도시화를 겪으며 고통 받았다고 한다.

쿠리치바는 16세기 포르투갈에서 온 이주민이 만든 도시로써, 브라질 남부에 있는 파라나(Parana)주의 주도다. 인구는 180만 명이며 도시권에는 300만 명이 생활한다. 그런데 이 도시는 1971년 33살의 나이에 쿠리치바 시장이 된 자이메 레르네르(Jaime Lerner)에 의해 전혀 새로운 방식으로 작동하는 도시가 된다. 레르네르는 청년 건축학도 시절, 도로중심의 도시정책에 반대하는 행동에 나섰다. 그는 학생운동에서 도시운동으로 건너와 새로운 개념의 도시건설에 열정적인 젊은이였다. 1968년 쿠리치바시 도시계획연구소(IPPUC) 소장으로 취임했으며, 시장이 되자 급진적인 도시 실험을 시작했다. 사람과 환경을 중심에 놓고 쿠리치바를 ‘지속가능한 도시, 세계가 주목하는 생태도시’로 만들었다. 1992년까지 25년간 세 차례 쿠리치바 시장을 역임했고 파라나 주지사는 두 번을 지냈다. 2010년 시사주간지 타임은 가장 중요한 사상가 가운데 한 사람으로 레르네르 시장을 선정한 바 있다. 그에 대한 책과 기사들을 읽고, 박원순과 이명박 서울시장을 비롯한 수많은 관계자가 찾아온 도시를 직접 체험해볼 수 있는 행복한 96시간을 시작했다.

탕구아공원 벤치에 앉아 한가롭게 햇살을 즐기고 있는 공원 관계자들. 평범해 보이는 녹지공원에 중요한 것은 시설의 탁월함이 아니라, 공공시설에 투영한 일관된 개념과 철학이다.

벤치에 앉아 한가한 듯이 햇볕을 쬐고 있는 ‘탕구아공원(Parque Tangua)’은 채석장을 공원으로 바꾼 곳이다. 레르네르의 표현대로 개구리가 왕자가 되듯이, 재사용과 재설계를 통해 도시 시설과 장소의 용도를 바꾼 것이다. 그러나 공원 인공폭포도 지형을 이용한 구조물일 뿐 별다른 것은 없어 보인다. 오히려 대전의 한밭수목원이 더 아기자기하고 걷는 재미가 있다. 탕구아공원은 도심에 있는 평범한 녹지공원이지만, 중요한 것은 시설의 탁월함이 아니라, 공공시설에 투영한 일관된 개념과 철학이었다.

탕구아공원 전경. 쿠리치바는 문명의 개입을 최소화하는 방식으로 도시개발을 한다. 도심 공원인 대전보문산 개발에 참고할 일이다.

쿠리치바시가 적극 홍보하는 ‘오페라 데 아라메(Opera de Arame)’ 역시도 소박했다. 오페라하우스라고 해서 거창한 시설을 상상했지만 ‘굵은 철사’에 유리를 이어 붙여 저렴해 보이기까지 한 철사오페라극장(Wire Opera Theater)이었다. 나는 그 시설물에서 베르디처럼 장치와 무대가 거창한 오페라를 상연할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이 들었다. 그러나 안으로 들어오며 2,400 객석에 무대 장치는 튼튼했다. 특별하지 않은 외관에는 자연 친화, 다른 시설과 조화, 에너지 효율을 고려한 특별해보이지 않는 특별한 설계가 있었다. 레르네르 시장은 그 시설을 불과 2달 안에 완공했다.

오페라 데 아라메 Opera de Arame, 오페라하우스라고 해서 거창한 시설을 상상했지만 ‘굵은 철사’에 유리를 이어 붙여 만든 극장이었다. 저렴해 보이는 외관과는 달리 2,400 객석에 무대 장치는 튼튼했다. 소박한 디자인에는 자연 친화, 주변 시설과 조화, 에너지 효율을 고려한 특별해 보이지 않는 특별한 설계가 있었다. (사진출처: curtacuritiba.com.br)

‘지속가능성’은 자원 사용을 최적화하면서도 더 좋은 방법이 나오면 수정하고 고쳐 쓸 수 있는 유연한 치유력을 말한다. 쿠리치바에서 도시개발은 도시가 스스로를 재생할 수 있도록 문명의 ‘최소한의 개입’만을 용인하는 것이다. 그래서 자동차 중심도시, 자본의 도시보다 사회적 비용이 적게 든다. 에너지 효율은 높으며, 관리비용은 적게 드는 도시가 된다. 이상적인 철학을 현실의 도시에서 구현한 것이다. 2021년에 고인이 된 레르네르 시장이 지구인에게 남긴 유산은 자본이 아니라, 철학을 바탕으로 해서도 창의적이며 지속가능한 도시를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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