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형태 칼럼] 검색(檢索)보다 사색(思索)

김형태 박사 승인 2023.04.06 16:36 의견 0

스마트폰을 갖고 있으면 언제든지 검색이 가능하기 때문에 비서나 조교 한 사람을 옆에 두고 사는 것이나 다름없다. 손가락의 동작은 예민해지고 재빨라지지만, 기억력은 점점 퇴보하는 것 같다. 나도 내 주민등록번호와 군번(軍番)만 기억할 뿐 가족들의 핸드폰 번호도 기억하지 못한다. 그래도 별로 불편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것은 장점만 있는 게 아니라 단점도 있다. 검색 기술은 발달 돼도 사색의 깊이는 보장되지 않기 때문이다. 기계적인 삶이다 보니 깊은 맛이 없다. 자동차 부품같이 돼 버린다. 그래서 생각하고 독서하며 인격의 심도를 강화해야겠다. 혼자 공부할 때 가장 긴 시간이 필요한 것이 ‘읽는 것’이다. 생각을 깊게 하려면 생각의 소재를 가져야 하는데 그것은 독서를 통해서 얻을 수 있다. 자극도 있고 재료도 있어야 사고(思考/생각)가 가능한 것이다.

18세기의 철학자인 임마누엘 칸트도 ① Hume(생각하는 방식에는 인간 특유의 버릇이 있다고 주장)의 회의주의 철학서와 ② 수베덴 보리(1688-1777/영적 세계와 현실 세계를 오갈 수 있다고 주장)의 저서를 읽고 자극을 받은 결과 자신의 <순수이성비판>을 썼다고 한다. 흔히 읽는 것(독서)을 수동적인 행위라고 생각하는데 실제로 읽기는 누군가에게 질문을 던지는 것보다 더 많은 노력이 요구되는 적극적인 행위다. 나는 대학에서 총장으로 재직할 때, 특강의 기회를 빌려 ‘책을 읽자, 신문을 읽자’는 캠페인을 벌였었다. 읽지 않으면(input) 제대로 말하거나 글을 쓸 수가 없기 때문이다(output). 밀가루를 넣지 않는데 국수가 나올 수 있겠나? 편안히 세상 풍조에 따라 살려고 맘먹으면 책이나 신문을 읽지 않아도 된다. 기존의 관행과 습관대로 살면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것은 제대로 사는 것이 아니다. 바람 부는 대로, 물결치는 대로 이리 밀리고 저리 떠다니기 때문이다. 조금 더 나간 사람이면 남을 모방하거나 일반론으로서의 매뉴얼 대로 사는 사람이다. 보통 수준의 일상생활은 해나가겠지만 이 또한 바람직하고 창의적인 생활을 하기엔 부족한 경우다. 그래서 자기만의 독립적인 독서방법이 있어야 한다. 독서가 생존 조건은 아니지만 자신의 정신세계를 풍요롭게 하는 데에는 필수적이다. 고대 사회는 현대처럼 책이 많지 않았다. 구전(口傳)과 전승(傳承)에 의해 部族단위의 역사 내용이 주민들에게 스며들어 갔다. 전승된 자료는 단순한 과거 기록이나 조상의 생활 사례에 머물지 않고 윤리나 생활방식을 포함한 종합적인 서적으로 발전되었다. 이런 것이 현대에 와서는 종이책으로 만들어졌고 점점 디지털화하고 있다.

우리가 논리를 전개하는 책을 읽을 때는 ① 논리의 취지 ② 논리의 근거 ③ 논리의 전제가 되는 지식, 관점, 가치관과 그 논리가 발생한 역사적 배경 ④ 논리의 구조를 파악하면서 읽어야 한다. 논리적 내용의 책을 읽을 때 이해를 방해하는 벽이 있다. ① 기초 지식이 부족하면 이해가 되지 않는다. ② 강한 편견을 갖고 있어도 이해에 지장을 받는다. 이해하는 방법으로는 명료한 분석과 분류법이 좋다. 아리스토텔레스 이후 학문의 기초는 분류법이다. 돈은 재무제표를 통해 분류하고 식물과 동물의 이해도 분류법을 통해서 한다. 또 정확한 이해를 위해선 순서를 따라가든지, 시간을 좇아가든지, 인과관계로 연결해가면 좀 더 쉽게 이해될 수 있다. 이렇게 논리적으로 안다는 것은 ① 다른 말로 바꾸어 설명할 수 있다든가 ② 뜻이 통한다든가 ③ 조리 있게 그림으로 표현할 수 있다든가 ④ 아귀가 맞는다든지 ⑤ 시종이 일관된다든가 하는 경우이다. 예를 들면, 논리에 아무런 문제나 비약이 없거나, 모든 설명이 체계적으로 연결돼 있다고 느끼거나 그 내용이 옳다거나 사실에 닿아 있다고 말할 수 있으면 이해됐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사기꾼과 사이비 종교가들은 논리적이고 조리 있고 타당하게 보이도록 설명하기에 속아 넘어가는 경우가 생긴다. 따라서 논리상 너무 완벽하면 오히려 의심하고 사색하고 점검해보아야 한다. 최근 유식한 사람들, 심지어 경찰 간부나 검사들도 보이스피싱에 속는 일이 있는 것은 정확히 이해하고 판별하는 게 그리 쉽지 않다는 증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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