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승일
승인
2023.05.09 15:04
의견
0
여승(女僧)은 합장(合掌)하고 절을 했다
가지취의 내음새가 났다
쓸쓸한 낯이 옛날같이 늙었다
나는 불경(佛經)처럼 서러워졌다
평안도의 어늬 산 깊은 금점판
나는 파리한 여인(女人)에게서 옥수수를 샀다
여인은 나어린 딸아이를 때리며 가을밤같이 차게 울었다
섶벌같이 나아간 지아비 기다려 십 년이 갔다
지아비는 돌아오지 않고
어린 딸은 도라지꽃이 좋아 돌무덤으로 갔다
산꿩도 섧게 울은 슬픈 날이 있었다
산 절의 마당귀에 여인의 머리오리가 눈물방울과 같이 떨어진 날이 있었다
―
되도록 읽고 싶지 않은 시 중의 한 편이다. 아무리 시대적 상황을 고려한다 한들 비애도 이런 비애는 없을 터. 처음 이 시를 접했을 때 나는 중학생이었다. 한참이 지나도록 그리고 지금까지도 심히 표현하자면 영혼마저 흔들리는 느낌이다.
시의 특징은 현재로부터 과거로 거슬러 서술하는 역순행적 구성이다.
백석(백기행) 1912-1996
시집 <사슴>
저작권자 ⓒ 시사저널 청풍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