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소식 칼럼] 법질서 확립을 위해서는 법을 제대로 만들고 운영해야 한다

윤소식 경찰청교통국장 승인 2023.05.09 15:29 의견 0

사회가 원활하게 작동하려면 법질서가 바로 서야 한다. 이러한 법질서는 법을 잘 만드는 것과 법의 취지에 맞게 집행하는 것이 중요하다.

“악법도 법이다.”라고 한 소크라테스의 말이 생각난다. 과연 이 말의 의미는 무엇일까?

지금의 우리 사회는 법이면 다 해결된다는 의식이 팽배해 있다. 물론 법의 중요성이야 백 번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그러나 지킬 수 없는 영역까지 법으로 규제한다면 사회가 원활하게 유지될 수 있을까?

우리는 법을 이야기할 때 로마법을 거론한다. 로마에 가면 로마법에 따라야 한다는 말도 있다. 시오노 나나미의 <로마인 이야기>를 읽으면서 법의 의미를 다시 한 번 되새기게 된다. 베스파시아누스 황제는 네로 황제가 로마 원로원의 탄핵을 받고 자살하자 황제를 규제할 수 없도록 황제 탄핵권과 국가의 적으로 규정하는 원로원의 권한을 없애는 황제법을 제정하였다. 이는 황제 자리에 있던 자가 부적격자로 판단될 때 교체하는 절차를 없애는 것으로 결국 극단적인 선택 외에 다른 방법을 사용할 수 없게 만들어 암살을 조장하는 결과를 초래하였다. 황제로서 직무를 충실히 하여 무기를 갖고 있어도 쓰지 않게 만들어야 하는데, 무기를 빼앗아 쓰고 싶어도 쓸 수 없는 상황을 만들어 탈출구를 봉쇄해 버렸다. 이는 법제화를 한다고 해도 완전한 해결을 기대할 수 없는 일을 굳이 법제화한 것이다. 베스파시아누스는 이제 안심하고 황제 자리를 맡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법의 희생자는 26년 뒤에 암살된 둘째 아들 도미티아누수 황제였다. 위험을 배제하려고 노력하면 할수록 발목이 붙잡힐 위험도 커진다는 것을 보여주는 좋은 예가 아닐까. 위험이 있으면 긴장감을 가지지 않을 수 없다. 그래서 무의식중에도 궤도를 수정하지 않을 수 없다. 사람이라면 해야 할 일과 해서는 안 될 일을 항상 의식하지 않으면 안 된다.

베스파시아누스 황제의 사례는 법이 중요하면서도 간과하기 쉬운 내용을 보여주고 있다. 세상은 법대로만 되는 것이 아니다. 법을 존중하고 지키는 것도 중요하지만 사람이 지킬 수 있는 법을 만드는 것도 중요하다. 과연 우리 사회가 이런 문제에 대해 얼마나 고민하고 있는가 하는 의문이 든다. 법이 아무리 잘 제정되었다고 해도 시행과정에서 제대로 집행하지 못하게 되면 오히려 국민의 법에 대한 경시 풍조만 확산시키게 된다.

법이 제대로 작동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법에 대해 알려야 하고 이를 알면서 위반했을 때 적발될 확률을 높여야 한다. 사람들은 처음에는 법에 대해 준수하려고 노력한다. 그러나 법을 준수해도 손해라고 인식하는 순간 법을 위반하려고 한다. 결국 법을 위반해도 처벌받지 않는다고 생각하게 되면 어떻게 하든 법을 위반하는 방법만을 찾게 된다. 따라서 법규위반에 대한 적발률을 높여야 한다. 교통위반에 대한 단속사례와 같이 무인단속 장비를 설치해서 위반한 사람은 누구나 예외 없이 단속하게 되면 위반율을 현저히 낮출 수 있다.

앞에서 법질서 확립을 위해서는 법을 잘 만들어야 하고 법을 위반하게 될 경우 적발의 확률을 높여야 함을 언급했다. 그러나 법 집행에 있어 유연성이 필요하다. 법을 위반한다고 했을 때 그 사정이 모두 다르다는 것을 인식하여 법과 원칙에 따라 집행하되 현장에서 그 사람의 입장을 충분히 고려해야 한다.

미국에서 어머니가 위독하여 속도위반을 한 차량을 발견한 경찰관이 해당 장소까지 에스코트하여 안전하게 도착할 수 있도록 돕고 장례식이 끝난 후에 위반행위를 단속한 사례를 통해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사람이 사는 세상이다. 서로의 입장을 조금이라도 배려할 수 있다면 더 나은 세상이 되지 않을까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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