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형태 칼럼] 늙은이 / No人 / 선배 시민

김형태 박사 승인 2023.05.10 14:42 의견 0

나이 들수록 낡아질 것이 아니라 익어가야 한다. ‘숙성’은 ‘성숙’이다. 대추도 묵은 나무에서 열려야 단맛이 깊다. 어떤 사회든지 늙어갈수록 행복하고 편안해야 좋은 사회다. 나이가 들수록 비참하고 외롭고, 천덕꾸러기가 된다면 그 사회는 좋은 사회라고 할 수 없다. 백발은 영광이어야 한다. 그래서 ‘장로’나 ‘원로’ 같은 칭호를 듣는 게 좋다. 우리 속담에도 ‘묵은 솔이 광 솔’ 이라 했고, 노인 한 사람이 죽으면 도서관 하나가 불탄 것과 같다고 했다. 노인이 없는 사회는 풋풋하고 싱싱하기는 하지만 깊은 맛이나 안정감은 떨어진다. 집안에도 아랫목에 할아버지가 앉아계셔야 무언의 질서가 잡히는 것이다.

<한비자>에 늙은 말의 지혜(老馬之智)란 말이 나온다. 제(齊)나라의 재상 관중(管仲)은 어느 봄날 대부 습붕(隰朋)과 함께 환공(桓公)을 따라 고죽(孤竹)국을 정벌하기 위해 진군하였다. 겨울까지 오래 계속된 전쟁이었는데 도중에 길을 잃고 말았다. 이때 관중이 말했다. “이럴 땐 늙은 말의 지혜가 필요합니다.” 늙은 말의 고삐를 풀어 놓아, 그 말이 가는 곳을 따라가서 위기를 벗어날 수 있었다. 그리고 어느 날 산속을 지나다 마실 물이 떨어졌다. 이때 습붕이 말했다. “개미는 겨울엔 산의 양지쪽에 살고 여름엔 북쪽 그늘에 사는 법입니다. 그리고 개미집이 땅 위 한치 높이에 있으면 그 밑으로 여덟 자를 파면, 반드시 물이 있습니다.” 그 말을 따라서 식수를 얻을 수 있었다.

관중이나 습붕같은 대학자도 알 수 없는 것이 있으면 늙은 말이나 미물인 개미의 지혜를 빌려 해결해 나갔다. 그리고 이런 지혜를 귀하게 여겼다. 젊은이는 빨리 달릴 수 있다. 그러나 노인은 지름길을 아는 것이다. 경험 이상의 지혜가 흔하지 않다. 학벌이 없어도 지역사회의 공동선을 위해 한 가정의 살림을 위해 이미 경험하며 나이가 드신 어르신이 있다는 것은 매우 다행스런 일이다. 팔씨름 시합으로만 따져서 老人을 ‘No人’으로 대해선 안 된다. 오히려 ‘선배 시민’이란 명칭으로 대할 수 있으면 좋겠다. 젊어서 좋은 게 있고 늙어서 좋은 게 있다. 신체, 건강의 면에서 보면 늙은이가 불리하다. 그러나 물리적 힘만 능사는 아니다. 봄철의 낙화(落花)는 빗자루로 쓸어내지만 가을에 떨어지는 빨간 단풍잎은 주워서 책갈피에 넣어둔다. 뜨는 해보다 석양 노을이 더 고운 것도 비슷한 이치다. 깊은 맛이 있는 것이다. 물론 늙을수록 생생함을 잃고, 주름이 지고 피부가 늘어지고, 흰머리가 나며, 머리칼이 빠지고, 살결은 푸석해지며 반점들이 생기니. 시들어가는 모습이다. 그러나 노인은 육체의 체력으로 일을 하지 않고 지혜와 경험으로 일을 하면 된다. 노인에게 체력을 요구하진 않는다. 우리가 ‘늙은이’로 살지 않고 ‘선배 시민’으로 살려면 젊은이가 갖고 있지 않은 영적 능력과 천국보장을 확보해야 한다. 젊은이들이 던지는 돌에 맞아 죽는 스데반이 어떻게 웃으며 가해자를 축복하고, 용서를 빌면서 죽을 수 있었나. 그는 젊은이(가해자)들이 보지 못하는 하늘(천국)에서 두 팔 벌려 환영하고 있는 예수님의 모습을 보았기 때문이다. (행7:55-60) 그는 죽음을 잠드는 것으로 체험했다. 바울사도가 복음 전도하다 당한 고난을 보자. 39대씩 5번 매 맞고, 채찍으로 3번 맞고 돌로 한 번 맞고 파선(破船)한 적이 3번 밤낮을 망망대해에서 표류했고, 강물의 위험, 강도의 위험, 동족의 위험, 이방인의 위험, 도시와 광야와 바다의 위험에 거짓 형제의 위험에 시달렸고, 수고와 고역에 고생했고, 여러 번 밤을 새웠고, 굶주리고 목마르고, 추위에 떨고, 헐벗고 굶주렸다. 그러면서도 여러 교회에 대한 염려가 끊이지 않았다. 이런 극한 고난을 어떻게 견뎌냈을까? 우리 보통사람은 도저히 견뎌낼 수 없는 일이다. (고후11:24-29) 그런데 그는 셋째 하늘(천국/삼층천)의 영광을 체험했기에 현재 이곳에서의 고생은 문제가 되지 않았다. (고전12:1-4) 우리들이 겉 사람은 늙고 힘이 없지만 하늘의 환영과 천국보장(입장권)을 받은 자는 이 세상에 두려울 것도 아쉬울 것도 없다. 그냥 신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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