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시(漢詩) 감상 몇 수

김형태 박사 승인 2023.06.12 15:22 의견 0

우리나라 역사를 대략 5,000년 역사라고 하지만 지금 쓰고 있는 우리말(한글)은 1443년 12월(세종 25년)에 창제되어 실험을 거친 후 1446년 9월 초(세종 28년)에 반포되었으니까, 현재까지 577년이 된 글이다. 그럼 약 4,500년 동안은 어떤 말과 글을 썼을까? 한자(漢字)를 쓴 것이다. 한글이 반포된 이후에도 극히 최근까지 한자, 한문(漢字, 漢文)을 병행해 사용해왔다. 따라서 한문을 쓰던 시대의 문학작품을 보려면 한시나 한문소설을 봐야 한다. 그래서 옛날 한시들을 찾아보았다. 짧은 글(오언절구) 속에 깊은 내용들을 담고 있었다.

① 을지문덕(고구려 영양왕 때 장군)이 수나라 장수 우중문(于仲文)에게 전한 시 한 수를 본다.

“기찬 책략은 천문을 뚫고(神策究天文) 묘한 계산은 지리 다했네(妙算窮地理) 싸움에 이겨 공이 높으니(戰勝功旣高) 족함을 알아 그만두게나(知足願云止)”

밋밋한 듯하지만 행간을 읽으면 간단치가 않다. 끝 구절은 노자의 <도덕경> 44장에 나오는 구절이다. “족함을 알면 욕되지 않고, 그침을 알면 오래갈 수가 있다(知足不辱, 知止不殆, 可以長久)”. 32장에도 “처음 만들어지면 이름이 있다. 이름이 있고 나면 그칠 줄 알아야 한다. 그침을 알면 위태롭지 않다(始制有名, 名亦旣有, 夫亦將知止. 知止所以不殆)”. 그러니 4구는 “이길만큼 이겼으니, 이제 그만 하자. 까불지 말고, 좋게 말할 때 돌아가거라.”라는 뜻이다. 우중문 장군은 이 글을 읽고 분기탱천하여 재도전했지만 지형지물에 익숙지 않고 도로사정도 잘 몰라 보급로도 확보되지 않아 크게 패한 후 겨우 목숨만 살아 달아나고 말았다. 적정한 때에 멈출줄 아는 것도 귀한 지혜다.

② 김부식(1075-1151)이 쓴 동궁춘첩(東宮春帖)은 이러하다.

“새벽 빛에 집 모서리 환하고(曙色明樓角) 봄바람 버들가지 끝에 분다(春風着柳捎) 야경꾼 새벽왔다 알리는데(鷄人初報曉) 벌써 침문 향해 조회한다(已向寢門朝)”

어둔 밤이 지나고 여명이 밝아온다. 누각 동편 모서리부터 밝은 빛이 짙어 온다. 창문 여니 따뜻한 바람이 불어온다. 야경꾼(鷄人)은 날이 샜다고 일어나라고 징을 친다. 그러나 그는 벌써 일어나 다 씻고 새로 옷 입고 동궁전에 아침 문안 드리러 나선다. 젊은 공직자의 양양한 포부가 느껴진다. 동궁에 임직하던 때 입춘날 써 붙인 시 한 수다. 새로운 시대를 향한 설렘이 넘치고 있다.

③ 신숙(申叔/?-1160)이 벼슬을 버리고 고향에 돌아가며(棄官歸鄕) 쓴 시가 있다.

“밭 갈다 흰 날 보내고(耕田消百日), 약초 캐며 청춘 지남에(採藥過靑春) 산도 있고 물도 있는 곳(有山有水處) 영예도 오욕도 없는 몸(無榮無辱身)”

밭에서 일하다 보면 금방 하루가 간다. 틈틈이 산에 올라가 약초도 캔다. 불끈불끈 솟아오르던 청춘의 꿈도 산 위에서 내려다보면 한낱 떠내려가는 구름 한 점일 뿐이다. 산은 변함이 없고 물도 쉬지 않고 흐른다. 항상 된 것들 속에 영옥이나 빈천을 다 떠내려 보내고 나면 내가 산이 되고, 내가 물이 되어 함께 살고 있다. 젊은 시절엔 산 너머로 흘러가는 구름을 보며 푸른 꿈을 키웠으나 뒤늦게 벼슬이나 공직을 끝내고 돌아와 보니 역시 고향이 따뜻하고 안온하다.

나는 70세에 한남대 총장으로서 두 번의 8년 임기를 끝내면서 퇴직했다. 6년의 고교 교사, 38년간의 대학 교수, 그중에서도 처·실장의 보직을 8년, 부총장 3년, 총장으로 8년을 보냈다. 은퇴 때 스스로 다짐했다. “나무는 꽃을 버려야 열매를 맺고, 강물은 강을 떠나야 바다에 이른다.”고. 도덕경에 나오는 “功遂身退(공을 세운 후엔 빨리 그곳을 떠나라)”를 생각했다. 그리고 이형기 시인의 “落花”를 외웠다. “가야 할 때가 언제인가를/ 분명히 알고 가는 이의/ 뒷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봄 한철 격정을 인내한/ 나의 사랑은 지고 있다// 분분한 낙화/ 결별이 이룩하는 축복에 싸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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