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승일의 시평] 너를 기다리는 동안 / 황지우

박승일 승인 2023.08.08 14:02 의견 0

네가 오기로 한 그 자리에

내가 미리 가 너를 기다리는 동안

다가오는 모든 발자국은

내 가슴에 쿵쿵거린다

바스락거리는 나뭇잎 하나도 다 내게 온다

기다려본 적이 있는 사람은 안다

세상에서 기다리는 일처럼 가슴 애리는 일 있을까

네가 오기로 한 그 자리 내가 미리 와 있는 이곳에서

문을 열고 들어오는 모든 사람이

너였다가

너였다가 너일 것이었다가

다시 문이 닫힌다

사랑하는 이여

오지 않는 너를 기다리며

마침내 나는 너에게 간다

아주 먼데서 나는 너에게 가고

아주 오랜 세월을 다하여 너는 지금 오고 있다

아주 먼데서 지금도 천천히 오고 있는 너를

너를 기다리는 동안 나도 가고 있다

남들이 열고 들어오는 문을 통해

내 가슴에 쿵쿵거리는 모든 발자국 따라

너를 기다리는 동안 나는 너에게 가고 있다

시를 쓰는 행위, 그 시를 읽는 행위 모두 쉽지 않다. 그러나 시를 읽는 이라면 반드시 의심해야 할 것이 하나 있다. 바로 주제이자 시가 던지는 메시지다. 위의 시에서는 너와 네가 그 의심의 대상이다. 그렇다면 너는 누구이며 나는 누구일까? 서정시를 읽듯 쓰인 그대로 읽는다면 위 시는 두말할 나위 없이 연애시다. 그런 이유로 많은 이들이 이 시를 연애시로 읽는 바.

그러나 황지우가 누구인가 그는 연애시를 빙자해 저항시를 쓴 것 아닐까?

오는 듯 아니 오는 열릴 듯 아니 열리는 그것 그건 뭘까 이 메시지 없는 시의 세상에 너를 기다리는 동안이 시사하는 건 뭘까?

황지우
<저물면서 빛나는 바다>, <새들도 세상을 뜨는구나>, <뼈아픈 후회>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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