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회 ‘세종시마루’ 신인상 시상식을 마친 후

민순혜 기자 승인 2023.08.08 14:19 의견 0

길이 없었습니다. 캄캄한 밤, 보이는 것이라고는 먼 하늘에서 반짝이는 별빛뿐이었습니다. 늘 다니던 길이었는데,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저는 허둥대며 어딘가 있을 저의 길을 찾았습니다.

마치 가뭄에 말라비틀어진 가시넝쿨을 걷어내듯 그렇게 저를 뒤적이며 속내를 휘젓고 있는데, 불현듯 길이 보였습니다. 솔직히 말한다면 단둘이 살던 모친이 제 곁을 떠나고, 죽고 싶을 만큼 외로웠을 때였습니다. 그런데 그 길이 저와 가까운 곳에 있었습니다.

지인이 읽고 있던 책을 무심코 들여다보게 되었습니다. 제목은 <아프지 않은 사랑이 어디 있으랴>!

인간은 아프면서 성장한다고 하는데 얼마큼 더 아파야 성숙한 걸까요. 아니, 저는 아직도 성장하고 있는 것일까요. 이런 질문에 대한 대답을 이 책에서 어렴풋이나마 구할 수 있었습니다. 길은 제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 어디에나 있다는 것도 비로소 알 수 있었습니다.

그때까지도 저는 이 길을 찾아 방황하고 있었나 봅니다. 늘 마지막을 마주하고 있는 제가 싫습니다만, 이제 저는 제게 주어진 아픈 삶을 감사하며 사랑하기로 했습니다. 송곳으로 찌르는 듯한 통증도 감내하며 살겠습니다.

지금 막 제 방 책꽂이 높은 곳에 올려놓았던 버려진 시집들을 아래 칸으로 내려놓았습니다.

진통을 겪으며 건진 한 편의 시를 보게 될 때 저는 행복하겠지요. 행복으로의 길을 ‘세종마루시낭독회’와 함께 하고 싶습니다. 저에게 그 길을 내준 ‘세종시마루’ 관계자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오늘이 있기까지 제게 시를 지도해 주신 전 충남대학교 국문학과 손종호 교수님께 감사드립니다. 저의 멘토이며 시 공부에 도움을 주신 박 시인님, 그리고 2022년 후반기 대전문학관 시 창작 심화반에서 강의해 준 성은주 교수님께도 고맙다는 말씀을 드립니다.

더불어 저에게 시의 길을 내주신 모든 분께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2023. 06. 08.
민순혜

페블비치(Pebble Beach)에서

태평양연안, 거센 파도는
겹겹이 들이친다

의장대 사열을 앞세우고
승전을 알리는 개선장군처럼
바다는 포효하고 있다

아니, 수천의 언어로
세상을 담금질하고 있다

황톳빛 해안가에는
조깅하는 커플들,
책을 들고 산책하는 가벼운 발걸음

언덕 위 소나무 옆 표지판이
길을 막는다
ㅡ 흙이 푸석거리니 미끄러지지 않도록 조심

순간, 내 발 아래를 치며 부서지는 파도

내 안에 잠든 의식이 깨어나듯
누군가가 나를 부르는 듯하다
낯선 여명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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