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기 칼럼] 한국사회에 보수와 진보는 존재하는가?

이창기 교수 승인 2023.08.09 14:25 의견 0

최근 미합참의장이 한반도에서 상황에 따라 며칠 안에 전쟁상태에 빠질 가능성이 있는 지역이라고 경고했다. 그런데도 한국민들은 놀라지도 않고 관심도 없다. 그 이유는 한국인들은 한반도에 전쟁이 나지 않을 거라는 확고한 믿음이 있기 때문이다. 전쟁이 나면 남북한 모두 초토화될 것이니 누구도 감히 전쟁을 일으킬 수 없을 거라는 확신을 갖고 있다. 또 하나는 박정희정부 이래 정권유지를 위해 북한의 위협을 이용해 온 업보 때문에 안보위기에 대한 감각이 무디어졌다는 일부 평가도 있다. 또 하나 다른 이유는 보수와 진보가 국내 정치싸움에 매몰되어 외부위협에 무신경하다는 점이다. 마치 임진왜란을 겪었던 조선 시대의 상황처럼 기시감이 드는 것도 이상한 일이 아니다. 조선이 멸망한 이유 중의 하나로 사색당쟁을 빼놓을 수 없다. 처음에 동인과 서인으로 나뉘더니 다시 서인은 노론과 소론으로, 동인은 남인과 북인으로 갈라져 조선의 후기사회를 해체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하게 된다. 이들의 특징은 상대를 절대 인정하지 않으며 상대를 끝까지 벼랑으로 몰아넣어 다시는 일어날 수 없게 만드는 것이었다. 어찌 보면 나만 옳고 상대는 그르다는 맥락 속에서 성리학 이외에는 모든 학문과 사상을 사학(邪學)으로 치부하는 결벽주의의 연장선상이 아니었던가 싶다. 오늘 우리 사회가 나의 이념 외에는 상대이념을 인정하지 않는 조선 후기를 닮아 가고 있다. 선조 때 왜나라를 방문했던 정사와 부사가 서로 다른 정세보고를 올리는 바람에 임진왜란을 당하지 않았던가. 당의 이익 앞에서는 국가의 존립도 관심 없는 사색당쟁의 그림자가 우리 앞에 펼쳐지고 있다. 한반도를 크게 보면 우선 남과 북으로 갈라져 있고 남쪽은 다시 진보와 보수로 갈라져 목숨 걸고 싸우고 있다. 이런 틈바구니에서 미중일러는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한반도를 멋대로 재단하고 있다. 이 시점에서 이념이라는 가면을 쓰고 당리를 앞세우는 것이 옳은 일인가? 물론 사람은 이념을 떠나 살 수 없다. 이념은 개인들이 갖고 있는 가치관, 또는 신념의 집합체다. 인간은 현실보다 더 높은 이상을 추구하고 그 이상을 달성시켜 줄 방향성, 즉 가치를 추구하는 존재다. 그래서 인간의 역사를 돌이켜보면 빵만 갖고 살 수 없는 인간들이 이데올로기를 위해 목숨을 내놓은 사례가 허다하다. 지금도 어떤 사람들은 자신의 신념을 지키기 위해 자신의 목숨과 신념을 바꾸기도 한다. 그러므로 인간은 이데올로기를 추구하는 존재라는 사실에서 자유로울 수 없을 듯하다. 그러나 한국 사회에 진정한 보수와 진보가 존재하는지 의구심이 들지 않을 수 없다. 보수와 진보를 가르는 기준은 자유와 평등이다. 보수는 자유를 추구하고 진보는 평등사회를 지향한다. 그런데 우리 사회의 보수는 자유를 노래하면서 언론과 집회와 결사와 표현을 통제하려 든다. 우리 사회의 진보는 평등을 말하면서 서민들이 내 집 하나 갖는 꿈을 여지없이 부숴버리고 있다. 더구나 보수는 유능하나 부패하고 진보는 무능하나 도덕적이라는 금언도 빈말이 되고 말았다. 유능하다는 보수가 정권을 잡으면 IMF 사태나 리먼브라더스 같은 경제위기가 반복된다. 도덕적인 진보정권은 성추행과 부정부패로 국민의 눈살을 찌푸리게 만든다. 또한 보수는 안보만큼은 든든하다는 믿음도 깨져버렸고 진보는 서민의 삶과 동떨어진지 오래다. 이런 면에서 한국사회에는 진짜 보수와 진보가 존재하는가에 대한 의구심이 들지 않을 수 없다. 물론 한국사회에 진짜 보수와 진보가 존재할 수 없는 데에는 남북분단이라는 특수한 상황이 버티고 있기는 하다. 보수는 북한을 적으로 규정하고 궤멸시켜야 할 대상으로 여겨 진보가 북한과 대화를 지향하면 빨갱이로 치부해버린다. 바로 여기에서 내편 네편이 생겨나게 되고 보수와 진보는 서로를 원수처럼 적대시하게 된다. 따라서 명백한 진실 앞에서도 보수와 진보는 맹목적일 정도로 서로의 입장이 확연히 다르다. 심지어 공정과 상식의 잣대마저도 자신의 지향성에 따라 고무줄처럼 일관성이 없다. 민주주의는 자유와 평등이라는 두 날개로 날아간다. 이제라도 진보와 보수가 상대의 가치를 인정할 건 인정하고 수용할 수 있는 것들은 수렴하면서 한반도의 미래와 민족공동체의 비전을 고뇌할 때가 아닌가 싶다. 이제라도 현대판 사색당쟁을 그만두고 우리 민족의 평화와 번영을 노래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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