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기 칼럼] 공과 사를 매개하는 공공의 가치

이창기 칼럼 승인 2023.09.08 17:28 의견 0

우리는 흔히 공무원들이나 지도자들에게 公과 私를 분명히 하라고 주문한다. 공은 공적인 영역의 일이고 사는 사적 영역의 일로 공적 영역에 근무하는 사람은 사적 감정이나 이익을 배제해야 한다는 의미로 쓰인다. 일본에서는 멸사봉공(滅私奉公, 사를 없애고 공을 받든다)이라는 말이, 중국에서는 파사립공(破私立公, 사를 없애고 공을 세운다)이라는 말이 사용되었다. 둘 다 공이란 전체를 의미하는 것으로 그 실체는 국가나 정부를 뜻한다. 반대로 사는 한 사람 한 사람의 인간으로서, 실질적으로는 국민이나 시민 또는 주민의 인격이나 권리를 말한다. 따라서 공을 세우기 위해서는 사는 부정되어야 한다는 셈이다. 이런 생각이 한중일 세 나라에서는 공교육을 통해 계몽되어 왔다. 공사를 분명히 하는 것, 즉 멸사봉공이 사회적으로 올바른 사상이자 올바른 윤리라고 모든 국민과 시민, 그리고 주민에게 주입되어 왔다. 그렇다면 과연 공적인 영역에 근무하는 사람들이 사적 감정이나 이익을 배제하기 위해 얼마나 노력하는가? 공과 사를 엄격하게 구분해 업무를 처리하는 사람들이 더 많겠지만 공적 업무를 처리하면서 사적 이익이나 감정이 개입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아무래도 인간은 감정의 동물이고 편견의 존재이다 보니 엄격성을 지키기 어려운 것도 사실이다. 그래서 자기와의 인연, 즉 학연이나 지연이나 혈연에 이끌려 업무를 처리하는 경우도 종종 발견되곤 한다. 또 공적인 업무를 처리하면서 뇌물을 받거나 부정한 방법으로 사적 이익을 취득하는 부패한 공무원이나 지도자들을 목도하게 된다. 이때 국민과 시민, 그리고 주민들은 공을 취급하는 관료들에 대한 불신과 거부감이 생겨나게 된다. 심지어 관료들은 관존민비(官尊民卑, 관은 존귀하고 민은 천하다)의 사고가 팽배하게 되면서 관은 우월한 위치에서 민은 착취의 대상이 되고 만다. 이처럼 관이 우위에 서는 구조에서 전체주의가 싹을 틔운다. 전체주의는 전체를 위해서 개인이 부정되고 희생되어야 한다. 본래 공이란 사였던 것이 점점 커지고 강해져서 마침내 공을 찬탈하고 그것을 사칭하여 공이라는 미명 하에 자기 이외의 사를 희생시키고 약탈하는 경우가 많다. 반대로 사를 강조하는 구조에서는 오로지 나만 챙기는 이기주의 사회가 형성된다. 이기주의 사회는 궁극적으로 공멸을 가져온다. 따라서 공과 사의 개념을 정확하게 규정하고 이를 매개하는 공공의 가치에 대해서 다시 한번 음미해 볼 필요가 있다. 공공철학자로 일본에서 활동하고 있는 김태창소장(공공철학 공동연구소)은 공이란 백성을 편하게 하는 것, 천하를 걱정하며 돌보고 대가 오래도록 전해져서 만민이 영원히 편안하기를 바라며 제도를 세우는 것이라고 말한다. 사는 제 한 몸을 돌보는 것으로 천하를 걱정하며 돌보려는 마음은 없고 단지 자기 처지만 생각한다고 규정한다. 이를 전환하기 위해서는 공사이원적인 상반적 구조에서 공과 사를 함께 수평적으로 매개하는 공공을 상정하는 삼원적인 상관적 구조로 발전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공과 사를 공매한다는 것은 공과 사가 대화하고 공동작업하고 개신, 즉 새로운 차원을 연다는 것이다. 공공철학이란 공과 사가 대화하는 철학이고 공동하는 철학이고 개신하는 철학이다. 이렇게 보면 공공은 공과 사의 사이에서 양쪽을 맺고, 잇고, 살리는 사고나 활동, 그리고 판단과 책임의 연동 과정으로 이해할 수 있다. 이러한 발상의 전환을 위해서는 국가의 존속을 위해서 한 사람 한 사람의 국민의 죽음이 요구된다고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국가야말로 모든 국민, 시민, 주민의 생명과 생활과 생업의 자립과 질적 향상을 실현해서 그들 스스로 각자의 존재 이유가 실감되는 공공선을 이루는 것이다. 국민이 국가를 위해서 죽어야 하는 것이 아니라 국가를 위해서 아무도 죽을 필요가 없는 멋진 국가, 사회, 세계를 함께 만들어 가야 한다는 것이다. 여기에서 김태창 소장은 좋은 사회, 존경받는 국가, 그리고 멋진 세계는 누군가가 우리를 위해서 대신 만들어 주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함께 힘을 합쳐서 만들어 가는 것임을 중요하게 인식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제 누구를 위해서라는 전체주의적 사고가 아니라 더불어 함께 만들어 가는 공동체주의적 사고를 요구하는 시대적 상황이 도래하고 있다. 공동체주의는 겸손을 최고의 미덕으로 삼는다. 역사적으로 돌이켜 볼 때 어떤 국가가 권력에 취하면 오만해지고 결국 몰락했었기 때문이다. 로마제국의 비극을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미국이나 중국 같은 강대국들이 공공의 가치를 재음미하고 공동체주의를 지향해야 세계의 평화가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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