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평용 회장 칼럼] 매화에 숨긴 아름다운 사랑

한평용 회장 승인 2023.10.10 15:17 의견 0

우리 지역의 대표적 서예가인 남계 조종국 선생이 필자에게 평소 아끼시던 서예 한 폭을 선물했다. 남계는 고향이 부여로 오랫동안 형제처럼 지낸 사이다. 호남형 얼굴에 풍채가 좋은 남계 선생은 심성이 후덕하여 주위로부터 인기가 높다.

남계가 주신 글씨는 전서로 써 큰 액자에 넣은 것이다. 남계 선생의 글씨는 언제 보아도 한눈에 대가의 품격이 있다.

평소 한학이 짧은 필자는 선물을 받았으면서도 깊은 내용은 알지 못했다. 남계 선생이 선물하면서 조선 중기 유학의 대가 퇴계 이황 선생의 ‘매화’ 절구라고 알려주었다. 너무 소중하여 벽에 걸어놓고 밤낮으로 바라보면서 시의 내용을 찾아보는 시간을 가졌다.

그런데 자료를 찾아보니 퇴계는 충북 단양 군수로 재직할 때 두향이라는 기생과 가까이 한 것을 알 수 있었다. ‘두향’은 누구였을까. 자료를 보니 단양군수로 부임한 퇴계는 이제 17세밖에 안 된 두향을 보고 특별하다고 생각한 것 같다. 왜냐하면 두향은 음악에도 조예가 깊었으며 퇴계의 시에 응답할 정도의 실력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두향은 자신이 아끼던 ‘매화분’ 하나를 선물했다는 것이다. 이 매화분이 도덕군자의 마음을 평생 빼앗을 줄 누가 알았겠는가. 퇴계는 당시 단양에 가족들을 데리고 오지 않고 관아에서 홀로 지냈다.

그런데 두향은 자태도 아름다웠지만, 악기를 잘 다루고 소리도 잘했다고 한다. 퇴계는 두향의 거문고 소리를 들으며 막 피어나는 매화를 생각하지 않았을까.

퇴계는 기생과의 염문을 달갑게 여기지 않았다. 자신의 마음속에 있는 진정을 어떻게 표현했을까. 퇴계는 스스로 매화시를 쓰기 시작했다고 한다.

유학자는 시 속에 두향을 지극히 아끼는 마음을 담았다. 한 자료를 보니 매화시가 100편이나 된다고 한다. 일부 국문학자들의 글을 보니 퇴계의 연모시라는 것이다.

남계 선생이 필자에게 준 작품도 그중 하나로 퇴계의 숨겨진 마음을 담은 것이 아닌가 싶다. 한학자인 선배에게 전화를 걸어 시를 쉽게 해석해 달라고 부탁했다.

縹緲淸標鶴上仙(표묘청표학상선) 아스라한 맑은 모습 학 위의 신선인데

故將芳意露春天(고장방의로춘천) 꽃다운 마음 짐짓 봄 하늘에 드러냈네

誰憐鼎實垂烟雨(수련정실수연우) 누가 정실이 연기와 빗속에 드리움을 가련타하랴

種出嘉在萌眼前(종출가재붕안전) 심어서 나온 좋은 싹이 눈앞에 있네

가녀린 매화를 신선에 비유하며 ‘봄날 꽃다운 마음을 드러냈다.’고 했다. ‘연기와 빗속에 드리우져 있으나 누가 가련타 하리요. 좋은 싹(어린 두향을 지칭한 것인가)이 눈앞에 있네.’라고 비유한 것만 같다.

퇴계의 매화시 ‘망호당에서 매화를 심방하다(望湖堂 尋梅)’ 시를 인터넷에서 찾았는데 더 그윽한 것 같다.

望湖堂裏一株梅 망호당 아래의 한그루 매화야

幾度尋春走馬來 널 보고자 몇 번이나 말 달려 왔나

千里南行難負汝 천 리길 남쪽으로 떠날 제 널 버리기 어려워

敲門更作玉山頹 또 찾아와 흠뻑 취해 곁에 누웠네

두향은 퇴계가 고향 안동으로 돌아갔어도 평생 잊지 못했다고 한다. 그리고 퇴계가 운명하는 날 함께 시를 나누던 단양 강선대에서 몸을 날려 극단 선택을 했다. ‘저승에 가서 우리 선생님을 인도 하겠다.’고 서두른 것인가.

남계 선생이 주신 퇴계의 매화시를 보면 두 분의 애절한 사랑을 다시 한번 생각해 보게 된다. 황혼이혼이 유행하는 시대, 사랑하는 사이에도 화가 나면 위해를 가하는 살벌한 세태, 옛 성인들의 아름다운 사랑은 큰 교훈을 준다. 올여름 단양에 가면 두향의 묘소를 찾아 술 한 잔 올리며 명복을 빌어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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