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형태 칼럼] 샤갈: 상상력의 화가

김형태 박사 승인 2023.11.09 15:25 의견 0

유대인은 다른 민족에 비해 상상력이 뛰어나다. 유대인은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이거나, 암기하지 않는다. 사물의 이치를 이해하기 위해 끊임없이 상상하고, 끊임없이 대화한다(하부르타 교육). 상대와 생각을 비교하고 검토하고 수정하여 완성된 끝을 보려고 한다. 이런 식으로 사물에 대한 연상작용을 통해 다양한 생각들을 만들어내고, 그것들을 상호 비교, 종합함으로 더 높고 깊은 단계로 발전하게 된다. 마치 우물을 파듯이 천착(穿鑿)하는 것이다. 뚜렷한 자신의 독창성과 주관이 나올 때까지 판다. 마르크 샤갈(Marc Z. Chagall/1887-1985)도 풍성한 상상력을 지닌 대표적 유대인이다. 색채 마술사로 불리며 표현주의를 대표하는 에콜 드 파리 최고의 화가인 샤갈은 러시아의 유대인 지역인 비테프스크에서 태어났다. 1907년 그곳 미술학교에 다녔고, 1910년 파리로 가서 ‘라 튀슈’에서 공부하며 큐비즘 기법을 공부했다. 1911년 앙데팡당전에 처음 출품하여 괴기하고 환상적인 화풍으로 전위파 화가와 시인들을 놀라게 했다. 그는 베를린에서 첫 개인전을 열어 성공한 뒤 화가로서의 명성을 얻었다. 그리고 1917년 러시아 혁명이 일어난 후엔 미술 단체의 요직을 맡고, 고향에 미술학교를 열었으며 1919년에는 모스크바 국립 유대극장의 벽화장식을 담당했다. 그러나 사회주의 리얼리즘과 맞지 않아 1922년에 다시 베를린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1년 후 파리로 갔다. 샤갈은 이때부터 본격적으로 판화에 관심을 갖고 에콜드파리의 유력한 작가로 주목받기 시작했다. 그는 환상적인 작품으로 초현실주의 미술에 큰 영향력을 발휘했다. 샤갈이 개성 넘치는 훌륭한 작품들을 남길 수 있었던 것은 상상력이 뛰어났기 때문이다. 그의 풍부한 상상력은 그만의 독창적인 화법(畫法)을 만들어냈다. 단순한 것 같으면서도 화려하고, 특히 환상적인 색채는 보는 이들에게 감탄을 자아내게 했다. 흔히 샤갈을 가리켜 마티스보다 따뜻하고, 피카소보다 감각적인 예술가라고 한다. 피카소와 더불어 20세기가 낳은 최고의 화가로 꼽힌다. 그의 작품 <도시 위에서>와 <에펠탑의 신랑 신부>를 보면 사랑하는 연인이 하늘을 날고, 중력을 거스르는 듯 둥둥 떠오르는 신랑 신부를 위해 염소가 바이올린을 연주한다. 꿈같은 이미지의 환상적 장면이다. 1985년 97세로 사망한 샤갈은 그의 긴 생애만큼 다양한 주제를 다루었는데 그중 <성서>와 <서커스>에 관한 주제는 샤갈 작품의 주축을 이루고 있다. 성서에 대한 그의 관심은 유대인이라는 태생적 이유와, 당시 유명했던 화상(畫商) 앙 브루아즈 뽈라르(Ambroise Vollard)의 영향이 컸다. 출판사를 운영하던 뽈라르는 <성서>의 삽화를 샤갈에게 의뢰했기 때문이다. <다윗왕/1951>, <율법판을 받는 모세/1952>, <십계판을 부수는 모세/1956>, <홍해를 건넘/1966>을 비롯해 <여곡마사/1931>, <대형 서커스/1958>, <파리 오페라 가르니에 천장화/1960-64>, <매츠대성당 스테인드 글라스/1958-1968> 등을 남겼다. 탈무드에 보면 “시대가 새로워진 것이 아니라 우리가 새로 태어난 것이다.”란 말이 있고, “지혜는 그것을 이용하려고 하는 자의 머리 위에서만 반짝인다.”란 말이 있다. 이 말은 새로운 시대에 맞춰가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시대가 오도록 자신이 끌고 가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적극적으로 지혜를 활용해야 더 나은 지혜를 얻을 수 있다는 말이다. 하늘을 나는 상상은 인간에게 비행기를 만들게 했고, 우주를 탐사하는 상상은 우주선을 만들게 했다. 동력으로 움직이는 배를 상상한 것이 타이타닉보다 더 큰 배를 만들게 했다. 어떤 이는 과학의 발전을 앞에서 이끌고 가는 사람은 만화가라고 한다. 만화로 상상의 세계를 그려내면, 과학자들이 그 상상을 현실로 만들어가는 연구를 통해 실제 상황으로 발전시켜 간다고 한다. 이런 점에서 소설가와 시인도 매우 중요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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