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승일의 시평] 강변 여인숙 2 / 권혁웅

박승일 승인 2024.01.08 15:06 의견 0

수면이 햇빛에 몸을 열어

파경(破鏡)으로 변할 때

산지사방 가출한 마음들이

돌아와 눕는 곳

거기가 강변 여인숙이다

엎드려 자고 일어나서

입가에 묻은 침을 스윽 닦아내듯

수면이 시치미 떼고

제 몸을 미장하는 곳

다 바람이 왔다 간 사이의 일이다

깨진 거울들을 나누어 주는

저 박리다매(薄利多賣)가 다 무엇이냐

우리는 거울 뒤편에서

화장을 고치거나 옷을 갈아입는다

그러다 문득

바람이 문을 열어젖힐 때

무슨 벽화처럼이나 그 뒤에 묻혀

발굴되고 싶은


사람은 더러 홀로 떠나보아야 한다. 둘만 함께 해도 관광일 수밖에 없는데 진정한 여행이란 오로지 사는 동안 잊거나 외면했던 나와 함께여야 하는 것. 이제 여인숙이란 눈 씻고 찾아봐도 없을진대 시인은 마음속의 강변 여인숙 하나 만들어 놓고 오래전 이곳에 머물다 간 사람들 그리고 오늘 이곳에 머무를 자신과의 서정을 만들어 간다.

권혁웅
<황금나무 아래서>, <마징가 계보학>, <그 얼굴에 입술을 대다>, <소문들>, <애인은 토막 난 순대처럼 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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