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기 칼럼] 장애인에 대한 인식을 다시 돌아보다

이창기 교수 승인 2024.01.08 15:08 의견 0

여러분은 ‘경계선 지능인’이라는 말을 들어보았는가? 필자 또한 처음 들어보는 생소한 단어라 의미를 찾아보았다. 경계선 지능인이란 ‘지적장애에 해당하지는 않지만 평균 지능에 도달하지 못하는 인지능력으로 소속되어 있는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여 지원과 보호가 필요한 사람’이라고 규정하고 있다. 평균지능이 71에서 85 사이에 있는 사람을 뜻하는데 학습지진아, 또는 느린 학습자라고도 불리며 우리나라 전체인구의 13.6%가 여기에 해당한다고 하니 어마어마한 숫자다. 이들의 지능과 사회성을 향상시키면 생산인력이 확대된다는 측면에서 관심을 기울여야 할 대상인구이다. 그런데 얼마 전 이와 관련한 세미나에서 이들을 장애인이라고 부르면 절대 안 된다는 이야기를 듣고 여전히 장애인에 대한 편견이 매우 심각하다는 걸 느꼈다. 어찌보면 준지적 장애인이고 그럴 때 보건복지부의 혜택도 받을 수 있으련만 굳이 경계선 지능인이라는 낯선 용어를 고집하고 있었다. 그 이유는 대상자들이 장애인이라는 말을 듣기 싫어한다는 것이다. 장애인은 신체나 정신적으로 불편할 뿐 일반인과 다르지 않은 인격의 소유자이다. 단지 일반인보다 인권을 더 보호해야 할 필요성이 있을 뿐이다. 장애인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신체적 고통은 극복할 수 있어도 차별과 혐오는 극복하기 힘든 심리적 고통이다. 그나마 장애인의 날이 비장애인들에게 장애인의 고통과 차별의 문화를 다시 한번 되돌아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는 측면에서 의미 있는 날이기는 하다. 그러나 장애인의 이동권만 보아도 우리의 현실은 여전히 비장애인의 장애인에 대한 편견과 차별이 심각할 뿐 아니라 제도적 뒷받침이 부족하다. 장애인에 대한 편견을 개선하고 차별을 줄이기 위해서는 복합적인 접근방식이 필요하다. 다양한 분야에서 함께 노력을 기울인다면 사회적 인식을 바꾸고 장애인들의 삶의 질이 향상될 수 있다.

우선 사람을 바꾸는 것은 교육이므로 인식을 개선하기 위해서는 교육이 매우 효과적이다. 학교 교육에서부터 다양성과 포용에 대한 교육을 강화하여 어려서부터 편견 없는 사회를 만들어 갈 수 있다. 나아가 성인이 되어서도 편견을 갖지 않도록 평생학습을 통한 장애인 인식 개선 교육을 반복적으로 실시해야 한다. 둘째 정부의 장애인에 대한 실질적인 정책운영과 이를 뒷받침하는 법적 제도적 장치가 선행되어야 한다. 차별금지법이나 장애인고용의무제 등을 철저하게 시행하고 감독해야 한다. 셋째 오늘날 미디어와 대중문화의 영향력이 매우 큰 상황에서 언론이나 방송을 통해 장애인의 다양한 이야기와 경험을 소개하여 장애인에 대한 긍정적 이미지를 만들어 가야 한다. 넷째 장애인의 접근성을 제고하기 위한 공공시설, 교통수단, 홈페이지 등의 접근성을 향상해 장애인들의 사회생활을 원활하게 할 수 있도록 사회서비스를 적극 지원해야 한다. 다섯째 마을회의나 학습동아리의 커뮤니티에 장애인들의 참여를 적극 유도함으로써 비장애인과 장애인의 동등성과 통합을 이끌어낼 수 있다.

위와 같은 개선방안들은 따로따로 접근하기보다는 복합적으로 적용되면 시너지 효과를 발휘할 수 있을 것이다. 학교 교육에서 인식을 개선하기 위한 일방적 교육보다는 비장애인과 장애인이 함께 어울려 체육놀이도 하고 문화예술활동을 함께 펼친다면 비장애아동들의 장애인에 대한 편견을 불식할 수 있고 이를 계기로 장애가 없는 것에 대한 고마움과 더 열심히 살아야 한다는 의무감을 느끼게 만들 수도 있다. 장애인의 반대말인 비장애인은 운 좋게도 선천적으로 장애를 갖지도 않았고 후천적인 질병이나 사고로 장애가 생기지도 않은 감사한 마음으로 살아가야 할 사람일 뿐이다. 장애아동을 가진 부모들의 한가지 소망은 아이보다 하루 늦게 죽는 거란다. 이 말을 듣는 순간, 그들이 얼마나 힘들고 고통스러운 삶을 영위하고 있는가를 피부로 느낄 수 있었다. 그의 인생은 온통 장애아이에게 달려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다 보니 장애 부모들의 타자에 대한 분노와 사회에 대한 불평이 가득할 수밖에 없다. 왜 나에게만 이런 고통을 안겨주었는가? 그런데 국가나 사회가 짐을 나누어 지기보다는 장애 부모에게 떠넘기는 일들이 반복되면 분노가 하늘을 찌른다. 그들의 짐을 나누어 지는 포용의 사회, 그들에게 숨을 쉴 자유의 시간을 부여하는 넉넉한 사회가 되어야 선진국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장애인이 편리하고 행복하면 일반인은 더 편리하고 행복할 수 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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