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승일의 시평] 채송화 / 송찬호

박승일 승인 2024.03.06 16:11 의견 0

이 책은 소인국 이야기이다

이 책을 읽을 땐 쪼그려 앉아야 한다

책 속 소인국으로 건너가는 배는 오로지 버려진 구두 한 짝

깨진 조각 거울이 그곳의 가장 큰 호수

고양이는 고양이 수염으로 알록달록 포도씨만한 주석을 달고

비둘기는 비둘기 똥으로 헌사를 남겼다

물뿌리개 하나로 뜨락과 울타리

모두 적실 수 있는 작은 영토

나의 책에 채송화가 피어 있다

아파트 평수도 넓고 자동차도 대단해야 하고 재산도 많고 학벌도 직업도 어마어마해야 한다. 그래야 오늘날 무서울 것 없이 사는 것 같다.

여리디여린 꽃 한 송이, 그 앞에서 무릎을 꿇고 들여다본다. 낮고 힘없고 보잘것없다. 하지만 물뿌리개 하나로 적실 수 있는 나만의 영토가 미소 짓고 있다.

송찬호
<10년 동안의 빈 의자>, <붉은 눈, 동백>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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