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승일의 시평] 빨랫줄 / 서정춘

박승일 승인 2024.05.08 16:30 의견 0

그것은, 하늘 아래

처음 본 문장의 첫줄 같다

그것은, 하늘 아래

이쪽과 저 쪽에서

길게 당겨주는

힘줄 같은 것

이 한 줄에 걸린 것은

빨래만이 아니다

봄바람이 걸리면

연분홍 치마가 휘날려도 좋고

비가 와서 걸리면

떨어질까 말까

물방울은 즐겁다

그러나, 하늘 아래

이쪽과 저 쪽에서

당겨주는 힘

그 첫 줄에 걸린 것은

바람이 옷 벗는 소리

한 줄 뿐이다


서정춘의 말은 짧다. 말이 길면 재미없고 지루하다. 단순하고 짧지만 얼마든지 시가 전하고자 하는 의미는 유추가 가능하다.

이 한 줄에 걸린 것은 빨래만이 아니다. 이쪽과 저쪽에서 당겨주는 힘. 그리하여 빨랫줄에 부딪는 바람 소리 등 내면의 혹은 외면의 우리의 모든 걸 널 수 있는 빨랫줄, 그건 뭘까?

서정춘
<잠자리 날다>, <수평선>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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