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무영의 여행이야기] 마음으로 떠나는 산책길

태화산 마곡사 백범명상길

소천 정무영 승인 2024.05.13 15:12 의견 0

태화산(泰華山)은 충청남도 공주시 사곡면, 신풍면, 유구읍에 걸쳐 있는 산으로 마곡사(麻谷寺)가 유명하다. 마곡사는 공주시 사곡면 운암리 태화산 동쪽 산허리에 위치한 사찰이며, 대한불교 조계종 제6교구 본사이다. 마곡사는 ‘산사, 한국의 산지승원’ 중 하나로 세계유산에 등재되어 있으며, 마곡사 일원은 2018년 1월 22일 충청남도 기념물 제192호로 지정되었다.

삼국시대인 640년(백제 무왕 41년/신라 선덕여왕 9년)에 자장(慈藏)율사가 창건하였다 전해지며 이후 후삼국시대쯤에는 폐사가 되어 도적의 소굴이 되었다가 고려 명종 때인 1172년 보조국사 지눌이 제자 수우(守愚)와 함께 왕명을 받고 중수하고 범일대사가 재건하였다고 한다. 이후 도선 국사가 다시 중수하고 각순대사가 보수한 것으로 전해오고 있다. 조선시대에 세조가 이 절에 들러 '영산전'이라고 현판을 내려주었다 한다. 신라 자장율사가 창건 당시에는 30여칸의 큰 사찰이었는데, 현재는 대웅보전(보물 제801호), 대광보전(보물 제802호), 영산전(보물 제800호), 사천왕문, 해탈문 등의 전각들이 가람을 이루고 있다. 이 밖에도 도량의 성보로는 5층 석탑(보물 제 799호)과 범종(지방유형문화재 제 62호), 괘불 1폭, 목패, 세조가 타던 연, 청동향로(지형문화재 제20호)가 있으며 감지금니묘법연화경 제6권(보물 제270호)과 감지은니묘법연화경 제1권(보물 제269호)이 보존되어 있다.

대웅보전에는 싸리나무 기둥 4개가 있는데, 저승에서 염라대왕이 “마곡사 싸리나무 기둥을 몇 번이나 돌았느냐?” 하고 물어봐서 많이 돌았으면 극락에 쉽게 가고 한 번도 안 돌았으면 지옥에 떨어진다고 하여 온 사람들이 모두 기둥을 돌기 때문에 반들반들 윤이 난다고 한다. 마곡사는 특히 불화를 그리는 유명한 화승들을 많이 배출하여 남방화소(南方畵所)라 불렸다. 금호(錦湖)-보응(普應)-일섭(日燮)으로 이어지는 화승의 계보를 지니고 있으며, 오늘날에도 화승들을 추모하는 불모다례제가 해마다 행해지고 있다.

마곡사는 백범 김구 선생이 젊은 시절 한동안 머문 적이 있다. 정확히는 치하포 사건으로 수감 도중 인천에서 탈옥해 전국을 돌며 도피 생활을 하던 중 이곳에서 하은당이라는 승려를 은사 삼아 '원종(圓宗)'이라는 법명으로 승려로 출가하였다. 그러나 수사망도 좁혀지고 승려 생활도 하은당에게 갈굼만 당하는 등 영 좋지 못하자 금강산으로 가서 더 큰 가르침을 받겠다는 핑계로 여섯 달만에 절을 떠났다. 그 뒤 백범은 부모의 설득을 이기지 못하고 환속하였고, 농촌 계몽운동을 거쳐 독립운동에 투신하게 된다. 백범은 오랜 시간이 지난 1946년, 임시정부 주석이 되어 마곡사를 다시 찾았고 사찰 경내를 둘러보며 “사찰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는 기상으로 나를 환영하여 주나, 48년 전의 승려들은 한 명도 볼 수 없었다.”고 백범일지에서 회고했다. 백범이 광복 이후 방문했을 때 경내에 무궁화와 향나무를 심었다고 하는데, 향나무가 오늘날까지 남아있다.

마곡의 곳곳, 마음에 꼭꼭

봄볕 좋은 주말 아침 태화산 마곡사를 찾는다. 2~3년에 한 번씩 방문하는 곳이다. 부처님오신날이 다가오면 몇 해 전 연꽃등이 나무마다 주렁주렁 열렸던 기억에 ‘올해도 볼 수 있을까?’ 하는 기대와 백범명상길의 고즈넉함이 유혹하기 때문이다. 마곡사에 갈 때마다 뵙는 오래 전부터 이어진 주지 스님과의 인연이 마곡사가 더 친근하게 느껴는 듯하다. 주차장에 주차를 하고 상가길을 걸어 올라가 일주문을 지나면 거기서부터 마음이 편안해진다. 바나나처럼 휘어져 걸어가는 길이 마치 아늑한 어머니의 품으로 가는 길 같다. 걸어가는 길 개울 건너편으로 마곡사 전각들이 들여다보인다. 마곡사에 갈 때마다 궁금한 것이 있다. 일반적으로 사찰에 가면 일주문이 제일 먼저 맞이하고 일주문을 지나면 사천왕문이 맞이하는데 마곡사는 해탈문이 천왕문 앞에 있다. 오늘은 해탈문을 유심히 들여다보기로 한다.

해탈문은 사실상 마곡사의 정문으로 이 문을 지나면 속세를 벗어나 불교세상으로 들어가게 되며 해탈을 하겠다는 마음을 갖게 된다고 하여 해탈문이라 한다고 한다. 문 안쪽 양편으로는 금강역사상, 보현, 문수 동자상을 모시고 있다. 해탈문을 지나면 바로 천왕문이다. 천왕문은 해탈문에 이어 마곡사의 두 번째 문으로 조선 후기에 건립된 것으로 추정되며 통로 안쪽으로 동서남북의 불법을 수호하는 호법신인 사천왕상이 있다. 사천왕은 천성계의 가장 낮은 곳인 사천왕천의 동서남북의 네 지역을 관할하는 신적 존재로 부처님이 계신다는 수미산의 중턱 사방을 지키면서 인간들이 불도를 따라 사는지 살피어 그들을 올바르게 인도하는 역할을 수행한다. 나는 늘 사천왕문에서 네 분의 신에게 합장으로 기도하고 문을 지나 들어간다. 천왕문을 지나면 바로 마곡천을 건너는 극락교가 있고 극락교를 건너면 마곡사 마당이다. 경내에는 정면에 대광보전이 자리하고 그 앞으로 나라의 기근을 막는다는 보물 제799호, 일명 다보탑 또는 금탑이라고도 불리는 오층석탑이 자리하고 있다. 탑의 2층 네 면에는 소박한 솜씨로 ‘사방불’이 양각되어 있으며 상륜부에는 청동제인 풍마 등이 조성되어 있다. 라마식 보탑과 유사한 점으로 보아 원나라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사방불이란 동서남북의 방위개념으로 모든 방향을 포괄하는 상징이기도 하므로 사방불은 모든 공간에 부처님이 영원히 거주한다는 불신상주의 전형적인 모델이라 할 수 있다.

대광보전은 마곡사의 중심 법당으로 1788년에 중창되었으며 보물 제802호로 지정되어 있다. 대광보전 내부에는 비로자나 부처님이 건물 서쪽에서 동쪽을 바라보도록 특이하게 봉안되어 있다. 비로자나 부처님은 진리 자체를 상징하는 부처님으로, 진리의 몸이 온누리에 두루 비치는 광명의 빛을 내어 모든 이들을 지혜의 길로 이끌어 준다고 한다. 대광보전의 후불탱화는 영산회상도로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영축산에서 설법하는 장면을 그림으로 표현한 것이다. 대광보전은 100일 동안의 참회의 기도 끝에 깨달음을 얻어 앉은뱅이가 걸어 나왔다는 전설도 전해 내려오고 있다. 대광보전 좌측으로는 웅진전과 백범 김구 선생님이 머물렀던 백범당이 자리하고 있다. 백범당에는 백범선생의 진영(眞影)과 1946년 마곡사를 방문했을 때 마을 사람들과 함께 찍은 사진이 걸려 있는데 백범 선생 뒤로는 왼쪽에는 완장을 찬 좌익이 서 있고 오른 쪽에는 넥타이를 맨 우익이 서 있다. 이렇듯 백범 선생은 사상보다는 하나 된 조국을 더 원하였다. 사진 옆에는 백범 선생이 평생 좌우명으로 삼았던 친필 휘호가 있다. “눈 덮인 들판을 밟고 갈 적에 어지러이 걸어선 아니되겠지. 오늘 내가 걸었던 길을 뒷사람이 그대로 따를 테니까.”

대광보전 우측으로 계단을 올라가면 또 하나의 대웅전, 싸리나무 기둥을 안고 돌면 아들을 낳는다는 대웅보전이 우뚝 자리하고 있다. 2층으로 된 대웅보전은 통층으로 전각의 내부에는 싸리나무 기둥이 네 개가 있는데 여기에도 흥미로운 설화가 전해 내려오고 있다. 아들이 없는 사람에게는 마곡사의 싸리나무 기둥을 안고 돌면 아들을 낳는다고 일렀다고 하는 재미난 전설로 인해 지금도 이 싸리나무 기둥은 윤기가 나고 손때가 묻어 있다 한다. 석가모니 부처님을 중심으로 양옆에 약사여래부처님과 아미타부처님이 모셔져 있다. 이때의 부처님들은 공간적으로 과거, 현재, 미래의 삼세(三世)를 대표하므로 삼세불이라고도 부른다.

대웅보전을 뒤로하고 마곡천 돌다리를 건너 본격적으로 산행을 시작한다. 먼저 활인봉(423m)에 올라 생골을 지나 다시 나발봉(414m)으로 봄바람과 봄내음과 진달래가 동행하는 꽃길을 걸어간다. 언제와도 마음이 편하고 좋은 힐링길이다. 나발봉 정자에 앉아 간식으로 체력을 보충하고 한국문화연수원방향으로 하산을 한다. 콧노래를 흥얼거리면서 내려오다 보면 마곡사로 바로 가는 갈림길을 만나는데 아스팔트길이 보이는 쪽으로 내려서면 바로 ‘한국문화연수원’이 잘 조성되어 있다. 지나갈 때마다 언젠가 한번 와봐야 겠다고 생각하며 연수원 앞길 마곡천을 따라 마곡사로 돌아간다.


마곡사는 경내가 넓어서 남원과 북원으로 나뉘어 있으며 ‘春마곡 秋갑사’란 별칭에서 알 수 있듯이 봄볕에 생기가 움트는 마곡사의 태화산은 나무와 봄꽃들의 아름다움이 빼어나다. 마곡사는 세계 유산으로 등재된 전통과 불교의 문화가 잘 어우러진 사찰로 시원한 계곡의 맑은 물소리를 들으며 아름다운 산책길이 있기에 가족 나들이로도 좋은 곳이다. 이 봄 마곡사 태화산에서 꽃길을 걸어 보자.

유네스코 세계유산

세계유산위원회(WHC)는 2018년 6월 30일 바레인 수도 마나마에서 열린 제42차 회의에서 한국이 신청한 ‘산사, 한국의 산지승원’을 세계유산으로 등재했다. 우리나라가 등재 신청한 산사는 양산 통도사, 영주 부석사, 안동 봉정사, 보은 법주사, 공주 마곡사, 순천 선암사, 해남 대흥사 등이다.

템플스테이

천 년 고찰 마곡사 주변은 이중환의 ‘택리지’에서 십승지로 꼽혔을 만큼 절경을 자랑한다. 약 5km 구간의 울창한 소나무 숲길을 걷고 태화산의 맑은 숨결을 느끼는 템플스테이는 트래킹을 즐기는 활동가에게도, 봄볕을 사랑하는 몽상가에게도 안성맞춤. 지금 여기에서 잠시 멈추어 아무것도 하지 않기, 그냥 느릿느릿 걷기는 앞만 보고 열심히 달려온 내게 주는 선물로 최고가 아닐까?

32520 충남 공주시 사곡면 마곡사로 966 (041-841-6226 / www.magoksa.or.kr)

추천등산코스

○ 태화산 등산코스
1코스: 마곡사 → 활인봉 → 생골 → 마곡사 (5km, 2시간 30분)
2코스: 마곡사 → 활인봉 → 나발봉 → 마곡사 (6.5km, 3시간 30분)
3코스: 마곡사 → 활인봉 → 나발봉 → 한국문화연수원 → 마곡사 (7km, 4시간)

○백범 명상길
1코스: 마곡사 → 삭발바위 → 영은교앞 → 군왕대 → 마곡사 (1.5km, 1시간)
2코스: 마곡사 → 은적암 → 백련암 → 생골 → 마곡사 (1.5km, 1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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