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병무의 쌈지경영] 모야무지(暮夜無知)와 사지(四知)

조병무 편집위원 승인 2024.06.11 14:29 의견 0

후한 시대에는 환관들이 판치며 황제를 허수아비로 만들고,

권력을 쥐고 마구 흔드는 바람에 정치가 매우 어지러웠다.

정치와 관료가 문란 부패했던 시대다.

나라가 부패하니 백성들의 삶이 늘 고통스러웠다.

하지만 이런 세상에도 소금 같은 관리가 있었다.

양진(楊震)이라는 인물이다.

그는 해박한 지식과 깨끗한 성품으로 ‘관서 공자(關西 孔子)’라는 칭호를 들었다.

양진이 동래(東萊) 태수로 임명되어 임지로 가던 중 창읍(昌邑)이라는 곳에서 잠시 묵을 때

창읍 현령 왕밀(王密)이 밤늦게 혼자 찾아왔다.

지난날 양진은 왕밀의 능력을 인정해서 무재로 천거해준 사람이었다.

바로 양진이 왕밀의 출세길을 열어준 은인이었다.

즐겁게 담소하던 중 왕밀이 슬며시 옷깃 속에서 황금 열량을 꺼내어 공손히 양진의 무릎 위에 얹어 놓았다.

“이건 지난날에 저를 도와준 보답입니다. 부디 받아 주십시오.”

그러자 양진은 온화하면서도 단호한 태도로 말했다.

“나는 이미 옛날부터 자네를 알고 있었네. 그런데 자네는 내가 어떤 사람이라는 것을 잊었단 말인가?”

“태수 어른이 얼마나 고결하신 분인가는 항상 명심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그리 대단한 값어치도 못되고, 뇌물로 드린다는 생각은 없습니다. 단지, 옛날에 베풀어주신 은혜에 대한 참으로 보잘것없는 소인의 정성입니다.”

“자네는 지난날 내가 짐작했던 바와 같이 훌륭하게 성장하고 출세를 했네. 나에 대한 보은 이라면 직책에 충실하여 더욱 영전하게.”

“아닙니다. 이건 다만 제 성의입니다. 깊은 밤중이라 저와 태수님 외에는 아무도 아는 사람이 없으니(暮夜無知) 그냥 받아주시지요. 오직 태수님 한 분에게 옛정으로 올리는 것이니 너그러이 받아 주십시오.”

그러자 양진은 엄한 표정으로 그를 나무랐다.

“아무도 모르다니 그게 무슨 소리인가? 하늘이 알고(天知), 땅이 알고(地知), 내가 알고(我知) 또 자네가 알고(子知) 있는데 어찌 아는 사람이 없다고 하는가!”

이에 왕밀은 매우 부끄러워하며 물러갔다.

양진은 그 후로도 몸가짐을 바르게 해서 태위(군사 관계의 최고 책임자)라는 높은 자리까지 올랐다. 하지만 올곧은 성품의 양진은 상소로 간신들로부터 원한을 사기 시작한다.

『신은 군주는 예로부터 시정할 때 덕과 재능을 겸비한 사람들을 중용하여 나라를 다스리게 하고 관리들은 위법하고 나라를 혼란스럽게 하는 자들을 처벌하거나 죽인다는 말을 들었사옵니다. 그래서 당요우순(唐堯虞舜) 시대에는 재능과 덕이 있는 자들은 모두 조정에 나가 벼슬을 하고 악인들은 유배되거나 감금되었기에 천하의 백성들이 감복하고 나라가 번성하였사옵니다.

상서(尙書)에서는 암탉이 우는 것을 불길한 징조로 보았고, 시경(詩經)에서는 간사하고 꾀가 많은 여자가 정치에 참여하는 것이 나라가 쇠하는 근원이라 하였사옵니다. 옛날 정장공(鄭莊公)은 어머니의 뜻에 굴복해 동생인 공숙 단(公叔 段)을 내버려 두니 결국 모반을 준비하여 정장공은 동생인 공숙 단을 정벌할 수밖에 없었사옵니다. 춘추(春秋)에서는 이 일에 대해 “안 가르치고 죽었다(不敎而誅: 평소에 제대로 가르치지 않다가 일단 일을 저지르면 경솔하게 사람을 죽인다는 뜻).”고 헐뜯습니다. 예로부터 여자와 소인은 사귀기 힘들면서도 친해지면 시시덕거리고 멀어지면 앙심을 품는다고 하였사옵니다.

역경에 이르길 무유수 재중궤(无攸遂 在中饋) 하였으니, 간사한 부인은 정사(政事)할 수 없사옵니다. 따라서 빨리 아모(阿母, 유모)를 출궁시켜 밖에서 살게 하시고 그녀의 딸도 궁을 왕래하지 못하게 하소서. 그래야 조정의 은혜와 덕행이 끝없이 이어지고 폐하와 아모 모두에게 좋은 일이 됩니다. 폐하께서는 대국(大局)에 지장이 있는 자녀들에 대해서는 사사로운 감정을 버리소서, 나라에 유해가 가는 인물에 대해서는 인애(仁愛)와 우유(優柔)의 감정을 지우소서.』

올바른 일을 위해 여러 차례 상소문을 올리다가 결국 간교 당해 짐독(鴆毒: 짐새를 이용하여 제조한 독으로 사람을 일순에 죽일 정도의 맹독)을 마시고 죽는다. 국민은 안중에도 없는 연일 탄핵에 중독된 추악한 정치판 뉴스를 접하면서 옛사람들의 지혜를 살펴보고자 모야무지(暮夜無知))와 사지(四知))의 고사(故事)를 찾아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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