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직 공무원의 인생 2막 - 류 과장에서 류 작가로 미디어음성 류홍천 대표

김경희 작가 승인 2024.06.11 15:22 의견 0

아침 6시, 테니스코트로 향하는 류홍천 대표. 40년 관성처럼 몸에 밴 테니스 로 다져진 근육은 굳이 말하지 않아도 매일 아침 6시가 되면 자명종처럼 류 대표를 코트로 안내한다. 미디어음성의 류홍천 대표. 그는 음성군청의 퇴직공무원으로 현재는 음성을 기록하는 미디어음성의 대표로 활동하고 있다. 현직에 근무할 때도 아침 테니스 후에 출근하는 습관을 들였다. 퇴직을 위한 준비로 40년 동안 일상의 루틴이 된 테니스.

류홍천 대표

오늘은 아침 식사 후에 카메라를 매고 음성군 원남면 보천 양조장으로 핸들을 돌린다. 음성군 원남면 보천리에 100년 된 양조장을 취재하러 간다. 사진을 찍고 양조장 주인인 반 사장과 어머니를 인터뷰하면서 양조장의 역사를 기록한다. 마침 이만기 씨가 진행하는 TV 프로그램 ‘동네 한바퀴’의 촬영이 있어 류 대표도 덩달아 취재하는 재미가 배가 되었다. 그는 올해 충청북도 지원사업으로 음성의 40년 이상 된 노포 사진집을 만드는 프로젝트를 수행 중이다. 저녁에는 25년의 역사를 가진 충청북도의 대표축제 ‘음성 품바축제’의 현장을 사진에 담으러 품바 축제가 한창인 설성공원으로 향한다.

퇴직 후 바로 맞은 코로나, 위기가 기회

2020년 6월 말 퇴직 후 코로나로 전국이 꽁꽁 얼어붙었던 시기. 류 대표는 카메라를 둘러매고 충청북도를 홀로 누볐다. 코로나 시기라 동행자를 대동하기보다 혼자서 충북의 산하를 돌며 음성과 충북의 풍광을 사진에 담았다.

강원도 홍천이 고향인 류 대표는 마침 이름도 류홍천이라 태생부터 전통과 뿌리에 관심을 둘 수밖에 없었다고 자평한다. 공직생활을 음성군 금왕읍에서 시작하면서 40여 년을 음성에서 살고 있지만 정작 음성의 골목골목을 찾아다니지 못했다. 코로나 기간에 음성의 숨은 장소들을 찾아 카메라 렌즈를 통해 들여다보면서 더 깊이 알고 더 자세히 보면서 더 사랑하게 되었다. 해외의 어느 명소보다 음성의 작은 공간들의 역사성에 매료되었다. 그 즈음부터 사진으로 음성을 기록하고 수첩을 꺼내 새로운 사실들을 메모해가기 시작했다.

퇴직 후 사회봉사의 현장에서

류 대표는 음성군의 퇴직 공무원 단체인 ‘행정동우회’의 봉사조직인 ‘상록봉사단’의 단장으로 활동 중이다. 상록봉사단은 건실하게 공직생활을 했던 퇴직공무원들의 봉사조직인 만큼 다양한 봉사활동을 수행하면서 지역주민들에게 성실한 봉사조직으로 자리매김했다. 농촌 지역의 과수 농가들에게 ‘적과(과실의 착생수가 과다할 때에 여분의 것을 어릴 때에 적재하는 것)’ 봉사는 가뭄에 단비처럼 꼭 필요한 봉사인데 인건비가 상당한 지역이라 상록봉사단의 적과 봉사는 지역 농가들에게 대 환영받는 봉사활동이다. 칼갈이 봉사 또한 틈새 봉사활동으로 주민들의 가려운 곳을 긁어주는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퇴직공무원들의 훈훈한 봉사활동은 지역사회에서도 미담으로 회자되고 있다.

과수적과 봉사 활동

어머니 자서전, 새로운 인생으로 진입

류 대표는 열다섯 살에 어머니를 일찍 여의었다. 형제는 형님과 단 둘,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을 지울 수 없었다. 지혜롭고 생활력 강했던 너무 어여쁘고 영민했던 어머니를 내내 추억하고 있었다. 우연한 기회에 자서전 작가님께 어머니 이야기를 들려드리고 소장해왔던 추억의 흑백사진들을 전달했다. 불과 한 달여 지난 후 어머니가 자서전 속의 주인공으로 환생하면서 어머니를 다시 만나는 감격을 얻었다.

부부 교장으로 퇴직한 형님 부부와 어머니 책을 나누면서 형님도 돌아가신 어머니를 추억하면서 뭉클했지만 조카들이 돌아가신 할머니 이야기를 읽으면서 숙연해지는 모습을 보고 류 대표도 새로운 청사진을 그렸다. 부부공무원인 류대표도 본인처럼 장성한 아들 둘을 슬하에 두고 있다. 두 아들 역시 할머니에 대해 전혀 모르는 상태에서 책으로 만난 할머니는 자녀들에게도 또 다른 의미로 다가왔다.

어머니에 대한 감사와 어머니의 부재를 따뜻하고 견고하게 채워주신 외할머니에 대한 추억을 책으로 만들어내면서 부모님 자서전이 주는 감동을 많은 사람들과 나누고 싶다는 생각에 이르렀다.

“내 이야기 책으로 쓰면 열 권도 더 나온다.”고 늘 말씀하시던 우리 어머니의 이야기를 책으로 만들어 부모님 인생을 기억하고 기록하는 문화를 만들어 보려는 청사진을 그리게 됐다. 부모님 이야기를 들으면서 부모님들의 인생이 우리 사회의 역사와 맥을 같이 한다는 점에서 지역의 역사를 기록하는 데 까지 관심의 영역을 넓혔다. 누군가 반드시 해야 할 일이라 그렇다면 본인이 그 일을 하겠다고 미디어음성의 작은 문을 열었다. 이제 시작하는 회사지만 류 대표가 음성의 곳곳을 누비는 발걸음의 페달은 이미 멈출 수가 없다.

품바축제

2024년 음성을 기록하는 사업에 가속도가 붙다

2023년 충청북도 영상자서전 프로젝트에 참여해서 70여 명의 어르신 영상 자서전을 제작해드리면서 포문을 열었다. 다소 경직된 공직생활에서 벗어나 인터뷰를 하고 영상을 제작하는 일은 낯설었지만 류 대표의 평소 관심사와 일맥상통하여 배우는 자세로 첫 프로젝트를 잘 수행하고 작품들이 도내 공모전에서 다수 수상하는 뿌듯한 결과를 내기도 했다.

이제 사업 원년인 류 대표는 네 가지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다. 충청북도의 지방보조금 지원사업으로 음성의 40년 이상 된 노포를 기록하고 사진집으로 만들어 설성문화제 기간에 전시할 계획이다. 충북여성재단의 사업으로 남녀성평등 프로젝트인 ‘남녀가 일군 가업 이야기’를 책으로 진행 중이다. 음성군 주민자치회 복지분과장으로 활동하고 있는 류 대표는 복지분과 사업으로 음성군 어르신들의 자서전도 제작 중이다. 또한 음성군 생극면 사회복지분과 사업으로 신양4리 마을 기록 영상과 마을 어르신 자서전도 진행 중이다.

상록봉사단

개인의 역사는 위대한 사람의 역사와 달라 스스로 기록하지 않으면 사라지고 만다. 요즘은 기록이 주로 SNS, 핸드폰에 저장된 휘발성이라 소장의 가치를 두기엔 아쉬움이 많다. 50살이 넘는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책은 기억과 추억의 소장고로 대체불가한 영역이다.

현직 시절, 행사 때마다 그가 카메라를 들고 현장을 누비던 모습을 기억하는 선배들은 그가 퇴직 후 건네는 ‘미디어음성’ 명함을 보고

“카메라 둘러매고 다니더니 잘 어울리는 일이야.”라고 응원의 말을 건넨다.

36년 공직에 있던 신분에서, 기록 사업가로 전향한 그는 아직 호칭에 익숙하지 않지만 서서히 류 과장에서 류 작가로 옷을 갈아입기 시작했다. 사진을 찍고 어르신들을 인터뷰 할 때면 공직에서 맛보았던 결실보다 더 큰 만족을 느낀다.

매주 목요일에는 생극면 신양4리로 어르신들을 만나러 간다. 음성의 명포수로 유명했던 1938년생 어르신을 직접 뵙고 사냥 이야기를 들을 생각에 벌써 설렌다는 류 대표. 그가 사라져가는 음성 역사의 증인으로 견고하게 자리매김 할 것은 자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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