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정빈 당진 예술촌 촌장 ‘사랑이여 아프지 마라’

당신과 나 아름다운 소통으로 더욱 건강하고 더욱 행복하게 그것이 우리의 사랑이기를…

정다은 기자 승인 2020.05.06 15:50 | 최종 수정 2020.05.06 15:51 의견 0
송정빈 시인


“31년 충청오페라 단장의 내조를 하며 힘들 때마다 종이를 벗해 양식을 삼았던 넋두리가 시의 고운 옷을 입고 부끄러운 모습으로 사람들 앞에 나왔습니다. 사랑은 헌신과 오랜 기다림 속에 설렘이 있고, 희망이 있고, 행복이 있습니다. 어두운 터널을 지나면 밝고 아름다운 풍경이 보이듯 저의 삶도 그런 것 같습니다.”

 

Q. 시집 ‘사랑이여 아프지 마라’ 출판 동기는?

A. 1989년부터 충청오페라단 홍보팀장으로 일하며 가장 힘들었던 것은 사람과의 갈등이었어요. 금전 문제도 어려운데 사람과의 갈등까지 심하다보니 귀촌을 선택하게 됐고, 그 후 무료한 시간을 어떻게 보낼까 하다 학창시절 문학소녀의 꿈을 떠올려 글을 쓰기 시작했어요. 그러던 중 친구가 충청오페라단 30주년이 되니, 글을 잘 쓰고 못쓰고를 떠나 30주년에 맞춰 기념 시집을 내보라고 했어요. 때를 지나면 그 감정이 나오지 않는다면서요. 남편도 적극 권해 시집 ‘사랑이여 아프지 마라’를 오페라 갈라콘서트와 시기를 맞춰 출판했습니다.

 

Q. 31년 오페라단 홍보팀장(단장 내조)을 맡아 고생이 정말 많으셨습니다.

A. 음악 하시는 분들이 모두 다 하나같이 사모님 고생 엄청 하셨겠다고들 하십니다. 지나고 나서 경험했던 사람과의 갈등, 경제적 어려움 등 제 마음을 이 시집에 담았습니다. 그래도 다행이었던 건 남편이 직장을 다니며 일을 하셨던 것입니다. 그래도 먹고사는 것조차도 어려웠을 때가 있었습니다.

 

Q. ‘사랑이여 아프지 마라’에는 주로 어떤 시가 실렸나요?

A. 결혼과 함께 제가 꿈꿨던 꿈은 묻혀버렸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요즘은 그 꿈을 다시 꿔 보려고 했더니 이젠 몸이 말을 듣질 않네요. 마음은 여고생인데 언제 이렇게 나이를 먹었나 싶어요. 시집에는 시라는 개념보다는 오페라단 홍보팀장으로 살아오면서 그 때 그 때 시골스러운 제 느낌을 표현하고 기록한 책입니다. 어쩌면 일기장 같은 것이죠.

 

Q. 중간에 그만두고 싶은 생각도 있으셨죠?

A. 물론 있었어요. 그래도 남편도 그렇지만 저도 사람이 어떤 일을 시작하면 끝을 봐야 되지 않겠나 하는 오기가 생기더라고요. 무대 막을 내리고 나면 돈 계산 할 일만 남아있죠. 하지만 그러다 조금 지나면 다음엔 또 어떤 무대를 올리지? 그러고 있는 거예요. 참 이상하더라고요.

이제는 제가 선언을 했어요. ‘이제는 나는 나다. 누구의 부인도 누구의 엄마도 아닌 나 송정빈이야.’라고 선언하고 살아온 지가 몇 년 됐어요. 앞으로 제게 주어진 시간이 얼마나 될지 모르지만 나 송정빈, 지금부터 다시 시작해 보렵니다.

 

 

저자의 말

마음의 꽃밭에 사랑의 씨앗을 뿌리고 가꾸어 온 지 어언 50년 세월, 고통과 갈등의 날도 많고 기쁨과 행복의 날도 많았습니다. 힘들 때마다 종이를 벗해 양식을 삼았던 넋두리가 시의 고운 옷을 입고 부끄러운 모습으로 사람들 앞에 나왔습니다.

사랑은 헌신과 오랜 기다림 속에 설렘이 있고 희망이 있고 행복이 있습니다. 어두운 터널을 지나면 밝고 아름다운 풍경이 보이듯 저의 삶도 그런 것 같습니다. 남편이 가꿔놓은 고향집 잔디밭을 거닐며 지난날을 회상해 보니 슬프고도 아름다운 이야기들이 주마등처럼 지나갑니다.

올해로 30주년을 맞이하는 충청오페라단 감회가 새롭습니다. 강산이 세 번이나 변한 세월입니다. 온 가족이 힘을 모아 동분서주 할 때 믿고 따라준 자녀들에게 고맙고 특히 물심양면으로 출판할 수 있게 도와준 사위에게 고마운 마음입니다. 오랫동안 부지런함과 열정으로 오늘을 일궈온 남편 양기철 단장님께도 찬사를 보내며 부족하지만 이 시집에 사랑의 마음을 가득 담아 드립니다.

2019년 11월 구룡산장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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