웃는 골목 / 이정숙

이정숙 시인 승인 2020.07.08 16:10 의견 0

담과 담벼락이 붙을 듯
좁디좁은 서울의 어느 골목길
일렬종대만이 통과 가능한
불안과 그늘이 공생하며
발걸음 자꾸 주춤대던 길

녹슨 대문을 마주한 담쟁이는
축축 늘어진 몸 벽 그늘에 묻고
바람조차 한 자락씩 갈라져
사라져가던 골목
가끔 등 굽은 할매가
문턱에 걸터앉아 지팡이로
늙은 햇볕을 긁어대곤 했다

담장 밑에 꽃나무가 들어서고
바람이 어깨 위로 살랑거리며
풋풋하게 다가오는 골목
등허리 휘던 흔적만이
고스란히 남아
밤하늘 초승달로 기우는데
지나간 낡은 골목은 문득,
어머니의 긴 잠 같기도 하다

 

해설 | 서울에 있는 어떤 오래된 마을의 낡은 골목길을 아주 현장감 있게 잘 묘사해 보여주고 있다. 특히 “등 굽은 할매가/ 문턱에 걸터앉아 지팡이로/ 늙은 햇볕을 긁어대곤 했다”라는 구절은 그 골목의 오래된 분위기와 느낌을 정말로 실감나게 전달해주고 있다. 그리고 그 풍경은 곧 어머니와 연결된다. “긴 잠”을 주무시며 이미 돌아가신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을 떠올리며 이 풍경의 모습은 잊혀지고 사라진 사랑을 떠올린다. 지금 시인이 본 풍경과 그것에 생생한 묘사는 그가 간직하고자 하는 사랑과 그리움의 실체로 절절하게 다시 태어난 것이다. - 황정산 시인, 문학평론가

 


이정숙 시인 | 이정숙 시인은 서울에서 태어났고, 2015년 ‘호서문학’ 우수작품 신인상으로 등단했으며, 한국낭송문학대상, 목원 문학상을 수상했다. 현재 시인, 시낭송가, 한국낭송문학협회 부회장, (사)아노복지재단 ‘전국글짓기 공모전’ 대회 심사위원, 자서전 전문제작 ‘추억의 뜰’에서 작가로 활동하고 있으며, ‘한국 관세 신문’에 ‘이정숙의 시와 사람’ 칼럼을 연재하고 있다.
시집 <뒤돌아보면, 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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